성균관스캔들/장편

[아인여림][중기걸오] 몽리(夢裏) 02

음흉마녀 2015. 12. 6. 02:16

[아인여림][중기걸오] 몽리(夢裏) 02

 

 

 

 한참을 구석에 앉아 쉴새없이 욕설을 내뱉는 재신을 바라보던 중기의 손이 핸드폰을 집어든다.

 우선, 제 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박유천.. 민영이랑 집으로 좀 와라.”

 

 상대의 말을 싸그리 무시한 중기의 손이 휙 핸드폰을 저 편으로 집어 던져 버린다. 그 와중에 중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유아인.. 석자뿐 이었다.

 

 

 

 

 접선을 펼쳐든 용하의 손이 문을 열어젖힌다. 문 앞에 서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선준과 윤희를 제 방으로 끌어들인 용하의 뒤를 쫓아 방으로 들어선 선준의 시선이 제게 등을 돌린 기묘한 남자에게로 꽂힌다.

 

 “ .. 사형.. 뭡니까?.”

 “ … 우선 앉게.. 앉자고..”

 

 용하의 손에 이끌려 바닥에 주저앉은 선준과 윤희를 향해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려던 용하는 우물쭈물거리며 쉽사리 입술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속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언젠간 들킬 거라면 미리 말하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용하의 입술이 굳은 결심을 굳힌 듯 낮은 한 숨을 내쉰다.

 제 연인을 떠올리며 제 가슴을 움켜 쥐던 용하는 천천히 입술을 열어 쉽사리 꺼내지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끄집어 내었다.

 

 “ 우선.. .. 여기있는 건.. 걸오가 아닐세.”

 “ … , 보면.. 알겠습.. 니다..”

 “ 그럼.. 걸오 사형은 어디에 계시는 겁니까?.”

 

 나도 모른다네.. 라는 말을 뒤로 방바닥에 털퍽 처박혀 버린 용하의 입술이 큰 한숨을 내쉰다. 우물쭈물 방바닥에 손가락을 비비적거리는 아인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준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아인과 시선을 마주친 선준의 낮은 목소리가 아인의 귀를 파고든다.

 

 “ 그대는 이 곳의 사람입니까?.”

 “ .. 이 곳이라고 하면..”

 “ 이 나라 조선의 사람.. 이냔 말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아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애처럼 뚝뚝 눈물을 흘려대는 아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준이 머리를 굴리며 생각에 잠긴다.

 아인의 앞에 쪼그려 앉아 가만히 아인을 바라보던 윤희의 손이 뻗어져 나온다. 슥슥 머리를 쓰다듬던 윤희의 다정한 목소리에 아인은 슬쩍 고개를 들어올린다.

 

 “ 그쪽에서도.. 물에 빠진 거죠?.”

 “ … ..”

 “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반수교 아래로 떨어진 겁니까?.”

 

 가만히 자리에 앉아 뚝뚝 눈물을 흘려대던 아인의 입술이 제게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하자 용하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지었고, 윤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선준은,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용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서.. 주먹으로 한대 치려다가 떨어졌다?.”

 “ 동시에.. 아인이가 중기형 손 피하려다가 떨어진 것 같다.. 뭐 이런 스토린가?.”

 

 제 일이 아니라는 듯 무미건조하게 말을 끝낸 유천이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인다. 얼굴을 굳히고 연신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중기를 슬쩍 바라보던 민영이 자리에서 일어서 재신의 옆자리에 풀썩 주저 앉는다. 본능적으로 눈썹을 찡그린 재신이 어깨를 들썩이며 딸꾹질을 시작한다. 슬금슬금 엉덩이를 뒤로 빼는 재신의 꼴이 우습기라도 한 건지 깔깔 거리며 웃던 민영은 담배를 비벼끈 중기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재신의 곁에서 떨어져 나갔다.

 

 “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닐걸.. 드라마.. 이대로 엎어질 수도 있어.. 그건 알고나 있냐?..”

 “ .. .. 그건 좀 곤란한 문제긴 하네.. 이를 어쩐다.. 이거.. 누가 믿어줄 스토리도 아니고..”

 “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지?.”

 

 잔뜩 굳어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중기의 시선에 입술을 삐죽이던 유천이 자리에서 일어서 주방으로 걸어간다. 중기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되어서야 유천은 중기의 속을 박박 긁어대는 말을 끄집어낸다.

 

 “ 남의 일.. 이라고 쉽게 떠들지 않게 하려거든.. 전 여자친구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지.. 안그래요 형?.”

 “ 너 이 새끼가!..”

 

 얼굴이 벌개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중기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 보던 재신은 어이없다는 듯 껄걸 웃어 넘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재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중기의 입술이 낮은 욕설을 내뱉는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껏 소리를 높여 웃는 재신이 비웃는 것은 두 사람, 송중기와 구용하 두 사람이었다. 지독히도 똑 같은 얼굴을 하고 지독히도 똑 같은 짓을 했다니.. 재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를 죽일 생각도 없이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 계집이.. 좋은거지..”

 “ 그런게 아니라고!.”

 “ .. 구용하도 그렇게 말했지.. 내가 그.. .. 아인인가.. 뭐 그 녀석 마음이 어땠는지.. 얘기 해줄까?.. 진짜.. 죽여버리고 싶고.. 죽어 버리고 싶었을 걸?.”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제가 하고 싶을 말을 막힘 없이 줄줄 쏟아낸 재신의 입술이 비죽이 중기를 비웃는다. 이를 앙다물고 재신을 노려보던 중기는 이내 테이블에 놓인 담배를 집어 들었다.

 평소의 아인이라면 당장에 달려와 제 손목을 잡고 귀엽게 웃었을 녀석이지만.. 그는.. 지금 제 눈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입술을 비집고 한숨만 새어 나온다. 눈쌀을 찌푸리고 한참이나 허공을 바라보던 중기는 신경질 적으로 제 방으로 사라졌다. 가만히 중기의 등을 바라보던 재신의 입술이 낮은 탄식을 쏟아낸다.

 

 “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되돌리기 전까지 어떻게든 걸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거지.. ..”

 “ 그건 간단하지?.”

 “ 뭐가 간단해?.”

 

 

 

 

 “ 아인이 인 척 하는거.. 그거 밖에 더 있어?.”

 [걸오사형인냥 하는거.. 그거 밖에 더 있습니까?.]

 

 그녀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잘 새겨 듣게.. 아인.. 이제 자네는 걸오고..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대는 걸오가 어떤 녀석인 줄 안다고 했으니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을 거라 믿네..”

 “ .. ..”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아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용하의 손이 아인의 손을 덥썩 잡아챈다. 아인이 걸오의 행새를 하는 동안 그가 깎아먹은 점수를 회복해 놓으리라 머리를 굴린 것은 자신 이었지만, 이건 숫제 물가에 어린아이를 내놓는 것 마냥 불안해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

 유건 끈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는 아인의 흔들리는 눈동자며 바짝 마른 입술이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식은땀이 가득 베인 손을 슥슥 유생복에 문지른 아인의 손이 문을 밀어 연다. 천천히 밖으로 발을 내민 아인의 팔뚝을 잡아챈 용하의 입술이 천천히 아인의 귓가로 다가온다.

 

 “ 그대가 말하는 이야기 책이란 곳이 장의는 조금은 허술할 지 몰라도.. 실제의 하인수는 절대로 마주하지 않도록하게나.. 내가 걸오 그 개고리 같은 놈이 강의만 잘 들었어도..”

 “ 논어제 강의는 선준씨랑 윤식.. 씨가..”

 “ 대물!.. 노론!.. 말투부터 고치지 않으면 조만간 큰일이 나고 말게야!.”

 

 아인의 입술로 탁 소리를 내며 부딧힌 접선이 떨어진다. 후다닥 제 입술을 가리고 푸흐흐 웃어 버리는 아인의 어깨를 잡아 두어번 흔들며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말을 건넨 용하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뗀다.

 중일방 앞에 서서 저를 기다리는 윤희와 선준을 향해 후다닥 뛰어나온 아인의 미소에 당황한 듯 손을 뻗어 아인의 입술을 턱하니 가린 선준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주위를 살핀다.

 

 “ 자신있다 하지 않았소?.. 이러다간 오늘 조찬을 들기도 전에 다 걸리겠는걸?.”

 “ , 아아.. 미안.. 제대로.. 똑바로 할게요.”

 

 간신히 얼굴에 웃음기를 지운 아인의 손을 그러쥔 윤희의 발걸음이 진사식당으로 향한다. 유생복을 입은 사내들이 많아짐에 잔뜩 긴장한 아인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변을 살핀다.

 잠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듯 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인을 재촉하는 윤희의 우악스런 힘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는 아인의 등짝을 바라보던 사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뜨락으로 내려선다. 제 옆에 선 사내의 얼굴을 흘끗 바라본 사내의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 .. 뭔가 이상하지?.. 언제부터.. 미친 말이.. 저리 멍청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지?.”

 “ 알아 볼 까요?.”

 “ 아니, 잠이 두고 보지.. 구경하는 것도 참 재미있거든.. 저 녀석들은 말이야.”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시선이 아인의 등짝에 쩍쩍 달라붙는다. 아인이 여지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내의 입술이 벌어지며 끔찍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위기가 코 앞에 바짝 얼굴을 들이댄 것도 모르고 웃는 아인과는 다르게, 그의 위기를 단 번에 알아차린 것은 공교롭게도 단 한 마디도 전해줄 수 없는 재신 이었다.

 

 “ 저게.. .. 인수라고?.”

 “ 실제 이름은 전태수.. 태수 형이라고 불러.. 둘이 사이 좋았으니까.. 신기하네.. 얼굴을 못 알아 보다니..”

 “ 당연한거 아닌가?.. 하인수는 저런 낯짝이 아니니까..”

 

 재신의 말에 고개를 돌려 재신을 바라보던 중기의 눈썹이 찡그려진다. 가만히 코디들의 손길을 받으며 의상을 정리하는 태수를 노려보며 입술을 짓이기던 재신의 시선이 중기를 향해 돌려진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재신을 바라보던 용하의 귓가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파고든다.

 

 “ 하인수가 저런 어중간한 낯짝 인 줄 알아?.. 선한 낯짝 안에 뱀 같은 혀를 숨겨둔 놈이다.. 여림이나 나는 커녕.. 그 노론새끼도 함부로 덤빌 수 없을 정도로 용의주도하고 눈치 빠르지.. 내가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내가 있던 곳에서의 구용하는.. 아직도 하인수의 곁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 … …”

 “ 니가 그렇게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그 놈이.. 그렇게 멍텅구리 같은 놈이.. 하인수 낯짝 하나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 손에 넘어가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단 말이다.”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건만.. 중기는 제 등줄기로 흐르는 서늘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배역에 잘도 녹아드는 재능 탓에 모두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뿐, 아인은 걸오라는 인물과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잘도 웃고, 잘도 울고.. 바보 같이 누구나 다 좋은 사람일 것이라 잘 믿어 버린다.

 선한 얼굴 속에 감춰진 뱀 따위를 알아볼 수 있을리 없다. 머리로 피가 몰리는 느낌에 다리가 휘청인다. 가만히 연기를 준비하던 태수가 중기와 재신 쪽으로 시선을 옮겨 인사를 건넨다.

 꽤나 잘 꾸며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재신과는 달리 중기는 그 자리에 멈춰서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 .. 아인..”

 

 낮은 신음처럼 아인의 이름을 지껄인 중기의 푹 숙여진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진다. 서늘하고 끔찍한 상상이 혀를 길게 빼어물고 중기의 몸에 휘감겨 온다. 손을 들어올려 제 얼굴을 가린 중기의 입술이 쉴새 없이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알길 없는 아인은 바보 같이 아가리를 벌리고 저를 끌어들이는 진사식당 안으로 제 발로 들어서고 있었다.

 

 “ 왜 그러시오?.”

 “ , 아니.. .. 서늘.. 한 것 같아서..”

 “ 한여름에 서늘하다니.. 걸오사형이 몸이 허하신가 봅니다.”

 

 농을 던지는 윤희를 향해 웃어 넘기면서도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 팔을 연신 쓸어내리던 아인의 고개가 슬쩍 돌려진다.

 

 하지만, 불안한 기운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