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인 역할인데.. 이렇게 민폐를 끼쳐대면 어쩌자는 건지.. 후..”
“ .. 누가 본인 이라는거지..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참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유아인이란 녀석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당패들이 하는 이딴 저질 스러운..”
“ 저질이라고 폄하 하지마!.. 나도 이런거 진짜 엿같은데 참고 있는 중이니까!..”
버럭 소리를 지른 중기의 입술이 긴 한숨을 내쉰다. 제 머리카락을 흐트리며 창 밖을 바라보던 중기의 시선이 창을 통해 비춰지는 재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저 똑 같은 얼굴의 주인공이 아인이라면.. 중기는 당장에라도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제가 잘못했다 빌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의 일에대한 사과를 받아줄 사람은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고, 자신은 이렇게 멍청하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먹을 강하게 그러쥔 중기의 입술이 무어라 단어를 끄집어 내기도 전에 벌컥 열려진 창 문을 비집고 얼굴을 들이민 유천의 시선이 가만이 구석에 앉아 잔뜩 얼굴을 굳히고 있는 재신에게로 향한다. 재신은 자신이 왜 이런 어이없는 놀이 장단을 맞춰주고 있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중기형, 사람 좀 그만 잡아.. 당연히 아인이처럼은 할 수 없지.. 그리고.. 이제 고작 3일이야.. 간단하게 잘 될리가 없잖아..”
“ .. 그렇게 태평한 소리 할 때가 아니라고!.. 누가 눈치라도..”
“ 눈치 챌 리가 있어?.. 우리도 아직 헷갈리는걸..”
꽤나 장난스러운 미소에 부아가 치민듯 주먹쥔 손을 들어올린 중기의 손이 허공에서 휙휙 휘둘러진다. 그런 중기의 눈치를 보면서도 처음으로 뒤로 물러서지 않은 유천이 손을 뻗어 벤 구석에 앉은 재신에게로 손을 뻗어 손목을 그러쥔다.
휙 잡아 당겨져 차 밖으로 끌려나온 재신을 향해 오늘은 저와 같이 가자고 말한 유천의 손에 이끌려 멀리로 사라지는 재신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던 중기의 입술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만다.
아인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 3일 만에 중기는 아인이 그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생글생글 잘도 웃던 아인의 미소를 떠올리며 중기는 이내 툭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 어딜 가는 거지?.”
“ 흠.. 오늘 우리 촬영은 다 끝났어요.. 그 의미는 집에 가서 쉴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아까 분위기 완전 살벌하던데.. 같은 차 타고 가는거.. 좀.. 그렇지 않아요?.. 오늘은 내가 데려다 줄게요.”
그의 말이 옳았다. 구용하를 꼭 닮은 낯짝에 성격은 정반대인 그와 언쟁을 벌일 때 마다 부아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단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그와의 대화는 결단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눈썹을 찡그리고 앉은 재신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천의 입술이 낮은 한숨을 내쉰다. 서로를 향한 날 선 적개심..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유천은 애써 모른척 했다.
“ 어디로 가는거지?.”
“ 아인이 집이요.. 뭐.. 재신씨가 있는 동안은 재신씨 집인거고요.. 보여주고 싶은게 있거든요.”
답답한 마음에 연신 한숨을 내쉬는 재신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유천은 걱정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인의 걱정에 온 신경을 쓰고 있을 중기를 대신해 어떻게든 주변을 정리하는 것은 자신이다라고 생각하는 유천이 쉴새없이 머리를 굴려댔다.
그런 재신과는 다르게 아인은 나름 적응을 잘 하는 듯 보였다. 윤희와도 선준과도 실제의 재신과는 다르게 잘 지내고 있었고, 하인수와 마주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나름 잘 지내고 있었다.
“ 오늘은 내 모란각에 다녀 와야하네.. 꼭 방에서만 기다리고 있게나.. 오늘은 모두가 본가로 갔으니 조심하고.. 절대로 진짜 내가 부를 때만 나와야 하네.. 알았는가?.”
“ .. 네.. 다녀.. 오세요.. 얌전히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해맑게 웃는 아인의 머리카락을 슬슬 쓰다듬는 손길이 꽤나 다정해 아인은 저도 모르게 중기를 떠올리고 말았다. 등을 돌려 자리를 방을 나서는 용하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방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천천히 고른 숨을 내쉬는 아인의 가슴이 조용히 들썩인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선 침입자의 조용한 발걸음을 듣지 못한 아인의 몸이 이리저리 뒹굴거린다.
침입자의 시선이 아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꿈길을 헤매던 입술이 슬쩍 열리며 몽롱한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 .. ㅈ.. 기.. 형..”
“ 후후.. 이런 이런.. 걸오가.. 어쩜 이리도 무방비 하게 있느냔 말이야.. 꼭.. 다른 사람인 것 같지.. 않나…?.”
방을 나서는 사내의 발걸음이 뜨락에 내려선다. 방문 앞을 지키고 서있던 사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꽤나 화사하게 웃어넘긴 이의 입술이 길게 벌어진다.
“ 여림은.. 지금.. 모란각에서 날 기다리고 있나?.”
“ 벌써 도착했을 것입니다.”
“ 그래.. 그럼.. 우리도 슬슬 출발하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머리를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얀 얼굴 가득 떠오른 미소에 슬쩍 어깨를 떤 사내가 제 앞을 걸어가는 이를 뒤쫓아 발을 옮긴다. 서늘한 바람이 창호문을 넘어 중이방으로 새어 들어와 아인의 뺨을 간지르는 것에 눈썹을 찡그린 아인의 손이 구석에 놓여진 이불을 손에 그러쥐고 몸을 빙빙 돌려 제 몸을 온통 감싼다.
제 코 앞까지 다가온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인은 그저 기분 좋은 꿈 속을 걷고 있을 따름이었다.
“ 이건…?.”
“ .. 유아인!.. 지금 당신이 대역을 하고 있는 녀석이에요.”
재신을 제 앞에 놓인 요상한 기계에서 보여지는 저와 똑 닮은 녀석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얼굴을 굳혔다. 유천이 제 옆에 앉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재신을 제 앞에 보이는 것에 놀라 유천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재신의 시선이 화면 가득 보이는 아인에게로 고정된다. 꽤나 귀엽게 웃기도, 서글프게 울기도 하는 얼굴을 제 자신이 맞았다. 허나, 그는 자신이 아니었다.
“ 이런걸 본다고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는건가?.”
“ 아.. 뭐 조금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르니까.. 아인이 연기라도 보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유천의 얼굴이 피어오른 미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아인의 얼굴이 가득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재신은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분통에 쉴새 없이 한 숨을 내뱉아 냈다.
“ 후.. 젠장.. 구용하..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 이제와서 그런 소리를 해봐야 무슨 소용있어요?.. 우선은 지금은 잘 버틸 생각을 해야죠..”
선하게 웃는 낯짝 뒤로 보여지는 선준의 시선에 눈썹을 찡그린다. 이를 내보이며 으르렁거리는 재신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들어섰던 유천은 얼굴을 찡그리며 금새 거실로 나와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 집에 안온지 얼마나 된건지.. 냉장고에 있는게 없네.. 배고프죠?.. 오늘 하루종일 굶었잖아요.”
“ … …”
“ 밥이라도 먹자구요.”
재신은 유천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행동에 어이없는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짤짤 흔들며 털썩 소파에 드러누웠으면서도 재신은 화면 가득 보여지는 아인의 미소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 내가.. 저딴.. 실실 거리는 걸 쫓아 해야 한단 말이지?.”
“ ..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좀 더 걸오같이만 해주면 좋겠네요.”
놀리듯 말하는 유천을 차버릴까 잠시 고민하던 재신은 그냥 입술을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인의 웃음 소리만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아.. 돌아왔다..”
어두운 골목에 자리를 잡고 서있던 인형이 슬쩍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슬쩍 벌어진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온 붉은 혀가 제 입술을 핥는다.
손을 들어올려 제 뺨을 쓰다듬고 내려와 팔뚝을 꽉쥔다. 제 손에 들려 팔랑이는 종이쪽지를 가만히 내려다 보던 남자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리며 주위를 살핀다.
어둑한 거리를 걸어 빠르게 건물로 들어선 남자의 입술이 쉴새없이 차가운 웃음을 흘린다.
“ 잘.. 돌아왔어.. 우리의.. 집으로..”
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쇳소리가 뚝뚝 떨어진다. 남자의 모습이 다시금 건물을 나와 어둠속으로 사라진 것을 알리없는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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