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여림][중기걸오] 몽리(夢裏) 05
“ 걸오.. 자네 안에 있는가..?.. 걸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용하의 뒤에 선 인수의 입술이 비죽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얀 얼굴에 비춰진 달빛이 서늘하다. 용하는 제 등 뒤에선 남자의 서늘한 기운을 애써 무시하며 창호문을 그러쥔 용하의 손끝이 살며시 떨려온다.
“ 걸오 자네 안에 있는..”
“ 이런.. 자네 방에 있던 녀석이 또 밤마실이라도 나갔나 보구만..”
휙 용하를 지나쳐 방안으로 들어선 인수와 달리 비어있는 침상을 내려다 보며 하얗게 질려버린 용하의 얼굴이 쉽사리 펴지지 않는다. 슬쩍 뒤를 돌아 용하를 바라보던 인수가 제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용하의 얼굴을 올려다 본다.
복잡한 머릿속을 들키고 싶지 않은 용하의 얼굴에 거짓 미소가 새겨진다.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서 창호문을 닫아거는 용하의 손끝이 파르르 떨려온다.
“ 그래, 자네가 나에게 할 말이란게 무언가?.”
“ 그저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네만.. 이건 걸오가 있어야 하는 거라.. 아쉽게 되었군..”
“ 자네가 걸오와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서?.”
“ 내 그 녀석과 약조를 한 것이 있어서.. 자네를 두고 말이야.”
인수의 눈이 희번뜩이는 것을 느낀 용하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진다. 절대 재신이 자신이 모르는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고 믿고 싶지만, 자신의 일이라면.. 걸오는 인수가 건네온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를 앙다문 용하의 서늘한 표정에 입술을 휘어 웃으며 좌탁을 툭툭 두드리던 인수의 얼굴이 용하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온다. 깜짝 놀라 슬쩍 뒤로 물러난 용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인수의 입술이 슬쩍 열린다.
“ 여림.. 내가 충고 하나 할 테니.. 들을텐가…?.”
“ 무, 무얼?.”
“ 자고로.. 사람이란.. 비밀이 많으면 많을수록.. 약점이 많아지는 법이지.. 여림 자네도.. 걸오도..”
깜짝 놀라는 용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인수의 몸이 일으켜 세워진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인수를 향해 시선도 보내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용하를 향해 슬쩍 시선을 보내던 인수의 입술이 용하를 조롱하듯 비웃음을 가득담은 목소리를 낸다.
“ .. 여림.. 그대는.. 내 사람.. 맞지…?.”
“ … 그래.. 아직은.. 그.. 렇다..”
“ 그럼.. 여림.. 약점은.. 키우지 말게나.. 나를.. 화나게 하지마.”
인수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용하의 이마로 식은땀이 베어나온다. 인수의 뻔히 다 알고 있다는 듯 한 시선에 몸이 떨려온다. 용하는 인수가 제 방을 나서고도 꽤나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 걸오.. 재야.. 나의 재야.. 너는.. 무엇을 걸고.. 나의 약점이 되었느냐.. 나는.. 이를 어찌해야 하느냔 말이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한참을 숨을 고른 용하의 고개가 퍼뜩 들어올려진다. 걸오의 품을 다시 만나려면 자신을 아인이 필요하다. 용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을 잡고 버텨야 했다.
곤히 자고 있었을 아인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창호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용하의 발걸음이 다급하게 옮겨진다. 재신을 위해서라면, 용하는 그 어떤 누가 내미는 손이라도 잡았을 것이다. 마당에 내려서 빠르게 내달리는 용하의 등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용하가 빠르게 동재를 벗어난다.
그리고, 용하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내달리는 똑같은 얼굴의 중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꺅꺅거리는 계집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내달리는 중기의 시선에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멍하니 내려다 보는 재신의 찡그려진 얼굴이 보여진다.
“ .. 그러길래 조심하라고 했잖아!.”
“ 아.. 젠장..”
주위에 모여드는 여인들을 후다닥 물리친 유천이 제 손에 들린 손수건을 재신의 손바닥에 놓고 피를 닦아 낸다. 슬쩍 바닥에 놓여진 상자에서 떨어진 지금 재신이 흘리고 있는 피와 다른 무언가의 피가 뒤섞인 상자에서 떨어진 사진과 쪽지에 적힌 혈서를 가만히 해려다 보던 중기의 입술이 연신 욕설을 내뱉는다.
팔을 뻗어 쪽지를 집어든 중기의 시선이 한참 재신을 노려보다 손을 들어올려 재신이 얼굴 앞에서 종이 쪽지를 흔들어댄다. 무슨 짓이냐는 듯 얼굴을 굳히던 재신은 중기의 입술이 열림과 동시에 낮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아인이가 당할 뻔 했던 일이야.. 문재신이 마음대로 행동하면 이 녀석은 바로 이런 행동을 해온단 말이야..”
“ 나는 약해 빠진 놈이 아니야.”
“ 그런 놈이 손이 이렇게 되나?.. 후.. 미친새끼.. 왜 갑자기 본인한테 직접 이러냔 말이야!.”
이를 앙다문 재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중기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가만히 내려다 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 소름끼치는 시선을 어디든 쫓아 오고 있었다. 찍혀 있는 것은 진짜 아인도, 지금 이 곳에 있는 재신의 모습도 찍혀 있었다.
역겨운 비릿한 피 냄새에 눈썹을 찡그리는 중기의 곁에 쪼그리고 앉은 유천의 시선이 바로 어제 찍힌 것 같은 사진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인의 옆에 선 자신의 얼굴을 일일이 난도질해 놓은 남자의 비틀어진 집착에 어깨를 떨던 유천은 까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중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형은.. 항상.. 이런걸 당했던건가..?.”
“ 그래.. 원래의 아인이는 이런거에 예민하게 구는 편이라 이 새끼 기분 나쁘게 행동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까지 한 거 보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단 거야.. 후.. 난감하네 진짜..”
중기의 말에 기분이라도 나쁜 듯 눈썹을 찡그린 재신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난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남자의 등장에 흠칫 어깨를 굳힌 재신의 손목이 천천히 남자의 손에 쥐어 잡힌다. 재신의 입술이 무어라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전에 제 손에 들린 소독약을 재신의 손바닥에 들이부어 피를 닦아 내린 남자의 손이 재신의 손바닥에 거즈를 올려 놓고 붕대를 감아 내린다. 멍하니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재신을 흘끗 바라본 남자의 입술이 꽤나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아, 스텝 알바 하는 사람이에요.. 다치셨다길래.. 약이랑 거즈 가져 온거구요.. 많이 아프신가요?.”
“ … …”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재신을 향해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보인 남자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건네고 후다닥 내달려 제게서 멀어지는 남자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던 재신을 제 뒤에 다가서 붕대가 감겨진 손을 내려다보는 중기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듯 어깨를 굳혔다.
“ 뭐야, 누가 해줬어.”
“ … 송중기.. 지금 충분히 이상한 걸 알고는 있는데 말이다.. 더 이상한 얘기를 하나 해줄까 하고..”
“ 뭔데.”
“ 지금, 내 이 손을 치료해준 녀석의 얼굴.. 내가 아는 얼굴인데 말이다.. 이게 정말 말이 안되는 건 알고 있는데.. 그런데..”
꽤나 진지한 표정의 재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재신이 다음 말을 끄집어 내길 가만히 기다리던 중기는 재신이 말을 끝내고 입술을 다물자 마자 중기는 눈을 크게 뜨고 재신의 어깨를 그러쥐고 짤짤 흔들며 그 말이 진실인지 확인해댔다.
고개를 끄덕이는 재신을 가만히 노려보던 중기가 내달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재신은 무언가 곤란한 일만 생기지 않길 빌었다.
“ 그 낯짝.. 하인수 였어.”
조금은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재신은, 그 낯짝을 제가 만났듯.. 아인이 어디선가 인수를 만나지 않길 빌었다.
뇌리를 스치는 인수의 미소를 떠올리며 이를 앙다문 재신의 시선이 허공을 날카롭게 노려본다. 자신이 돌아가기 전에 그는 절대로 하인수란 악귀를 만나서는 안된다. 아무도 모르는 둘 만의 약조를.. 절대로 용하에게 들켜선 아니된다.
이런 재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중기는 그저 사라진 남자를 찾기 위해 촬영장을 내달리고 있었다.
‘ 걸오.. 재야.. 나의 재야..’
멈칫, 그 자리에 멈춰선 중기의 시선이 저 멀리 제 손바닥을 바라보며 서있는 재신에게로 향한다. 확인 해야 했다. 지금 분명히 들릴리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언가 어긋나고 있는 것이었다. 천천히 옮겨지는 걸음 걸음마다 분노가 떨어져 내린다. 팔을 뻗어 재신의 멱살을 잡아쥔 중기의 행동에 놀라 후다닥 둘 사이로 파고들던 유천의 귓가로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 구용하가.. 너를.. 재야.. 라고 불렀나?.”
“ … 니.. 가 그걸 어떻.. 게..”
“ 젠장.. 씨발 젠장!!!!.”
중기의 욕설에 놀란 듯 그를 바라보는 유천과는 다른 시선으로 중기를 바라보는 재신의 눈이 일순간 크게 뜨인다.
뭔가 비슷한 상황이 그 쪽에서도 발생했다는 경고처럼.. 용하의 목소리를 들어버린 중기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진다.
“ 아인이한테.. 안좋은 일이라도.. 생겼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하냔 말이야..”
“ .. 아직은.. 괜찮을거다.. 의외로 구용하란 녀석.. 머리가 좋거든.. 그렇게 믿어라.. 지금의 나도 아무 일도 없잖아?.. 그것보다.. 다시 돌아올 녀석을 위해서 하인수 낯짝의 그놈.. 우선은 잡아봐야 하지 않아?.”
재신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어올려 재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중기의 발이 다시 내달린다. 중기가 저 멀리로 사라지고 나서야 제게 얼굴을 돌린 유천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재신을 향해 궁금한 것을 물어온다.
“ 태수 형이랑 얼굴이 다른데.. 당신이 있는 곳의 하인수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 몰라.”
애써 유천의 시선을 피하며 몸을 돌린 재신은 알고 있었다. 그는 위험하다. 그쪽이든 이쪽이든.. 하지만, 괜히 입술을 놀려 불안감을 안겨주고 싶진 않았다. 등을 돌려 내달리던 중기의 마지막 표정은.. 제가 생각 했던 것 보다도 더 용하의 표정과 닮아 있었기 때문에…
“ 걸오!!.. 걸오!! 어디 있는게야!!.. 걸오!!!.”
정신없이 뜨락을 왔다갔다 하며 아인을 찾아대는 용하의 곁으로 다가선 남자의 손이 용하의 어깨로 손을 올린다. 깜짝 놀라 휙 뒤를 돌아본 용하는 덜컥 눈물을 울먹이고 말았다.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의 손목을 그러쥔 용하의 참담한 목소리가 어둠을 가른다.
“ 그 아이가 없네.. 걸오가.. 분명.. 얌전히 있으라 그리 말했건만.. 그 아이가 없어졌어.. 가랑.. 이를 어쩌냔 말이야..”
“ 사형..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일찍 돌아왔는데 사형의 방에서 장의가 나오는 걸 보고 제가 바로 중이방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니 좀 진정을..”
선준의 손목을 그러쥔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그가 있어야 제 연인이 돌아온다. 이기적이지만.. 용하는 그것을 위해 아인을 절대로 놓힐 수 없었다. 뚝뚝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내려다 보던 선준은 다급하게 용하의 손목을 잡아채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선준의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선준은 발걸음을 느리게 할 수가 없었다. 엉망으로 망가진 고운 얼굴이 전해주는 처참함을 모른 척 하는 것 보다는 어떻게든 안심을 시켜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벌컥 열린 방문 사이로 보여지는 모습에 용하는 안으로 달려들어가 곤히 잠든 아인의 가슴팍 위로 제 머리를 처박아 버린다. 깜짝 놀라 퍼뜩 눈을 뜬 아인의 귓가에 습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황한 아인의 시선에 꽤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희들을 바라보는 선준이 보여져 눈꺼풀을 깜빡이며 의문을 보내본다.
“ 내 자네가 갑자기 없어져 얼마나 놀랐는지 아는가!.. 자네는.. 왜 이리 사람을 걱정시키냔 말이야!.”
“ 아.. 아니.. 나는.. 그냥.. 자고..”
“ .. 장의가 제 방에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으면 어쩌자는겐가!.. 이 구용하를 얼마나 걱정시켜야 직성이 풀리는가 말이야..”
가슴팍이 젖어오는 느낌에 작은 한숨을 내쉬던 아인은 조금씩 들썩이던 어깨가 심하게 떨리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 보며 슬쩍 팔을 들어올려 용하의 등을 슬슬 토닥였다. 그런 아인의 행동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어올린 용하의 귓가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전혀 다른 사람인데.. 얼굴 말고도.. 닮은 점이 하나 더 있네.. 어린애 같아.. 불안.. 하면.. 이렇게 어린애 같아 지는건가?.. 내가.. 없으면..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 되는거에요?..”
“ … …”
“ 도망.. 잘.. 다닐테니까.. 걱정 하지 말아요..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잘 도망칠 수 있어요.. 그리고.. 나 꽤나 능력있는 배우.. 음.. 사당패 였으니까.. 걱정 하지 않아도 되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정곡을 찔러오는 아인의 행동에 용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천천히 허리를 일으켜 세워 앉은 아인의 손이 용하의 눈가에 가득한 눈물을 닦아 내린다.
다시 한 번 용하를 제 품에 끌어당겨 안은 아인이 어린아이 어르듯 용하의 등을 토닥인다. 조용히 속삭이는… 마치 주문과도 같은 괜찮아 괜찮아 라는 다정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린다.
덥썩 제 허리를 끌어안아오는 이의 소리 죽인 오열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위로를 건네던 아인은 용하의 머리 위에 제 얼굴을 기대고 가만히 눈꺼풀을 내리 감았다.
“ 나도.. 그 제 멋대로인 사람이 보고 싶으니까.. 절대로..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 할게요.. 그러니까 진짜.. 걱정하지 말아요..”
“ … …”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아인은 대답을 듣기라도 한 듯 입술을 휘어 웃었다. 제 허리를 강하게 안아오는 팔의 힘을 느끼며, 아인은 그저 다정한 미소를 보내 주었을 뿐이었다.
서로 기댈 수 있는 아인과 용하와... ㅜㅠㅜ
자꾸 어긋나고 싸우고 투닥 거리는 중기 재신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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