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장편

[그래정구] さくら 10

음흉마녀 2016. 1. 2. 12:56

 

[그래정구] さくら 10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려 제 앞에 선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 본 정구의 입술이 기쁜 듯, 슬픈 듯 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쇠사슬에 묶인 팔을 천천히 들어올려 남자의 목덜미를 끌어 안았던 정구의 입술이 살며시 열린다.

 

 “ … 당신 너무.. 늦었어요..”

 

 

 

 

 

 

 

 

 [ 안주인은?.]

 [ 그게..]

 [ 안주인이 어디에 있는 것이냐 물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사내들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차갑게 굳어진 얼굴이 천천히 입술을 휘며 웃는다.

 제 앞에 놓인 일본도를 쥔 손이 덜덜 떨린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그래의 발걸음이 방 밖으로 나선다.

 

 [ 자리에 앉아라.]

 [ … 정구가.. 없어진 것이 일주일이나 되었다면..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다.]

 [ 알고 있다.. 허나, 야마구치의 안주인이라면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앉아라.]

 [ 어머님!.]

 [ 앉아!.. 아이스 코테츠.. 그리고.. 네 아버지다.. 그러니까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식히고 움직이란 말이다!.]

 

 여인의 기세에 주먹을 강하게 그러쥔 그래가 제 자리로 돌아가 털썩 주저 앉는다. 천천히 제 앞에 앉은 사내들을 바라보던 그래의 입술이 낮은 신음을 흘린다.

 

 [ 그 남자를 찾아.. 전국을 다 뒤져서라도.. 어느 시궁창에 숨어들었는지.. 당장 찾아!.]

 [ !.]

 

 정구의 웃는 얼굴만 그리며 비행기에 올랐던 기분이 처참하게 바닥을 나뒹군다. 혼란한 시선을 돌린 그래의 눈앞에 놓인 처음 보는 나카후리소데를 가만히 바라본다.

 만개한 벚꽃 나무가 수 놓인 기모노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래의 귓가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그날.. 그 아이가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네게 주고 싶었던 것이겠지.. 홋코리에서 같이 있는 녀석이 손수 가져 왔더구나.. 제발 찾아 달라고 울고불고 애원하면서 말이야..]

 [ .. 어머니.. 나는 이번엔.. 그 남자를 끝장내 버릴 생각입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서로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얼굴이 비죽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야마구치의 명예를 살린다는 명목 아래에 숙청을 벌일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 버렸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그래의 발걸음이 정구가 만들어 놓은 나카후리소데 앞으로 옮겨진다. 손을 뻗어 옷감을 그러쥔 입술이 낮은 한숨을 내쉰다.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려던 마음이 앞서 한치 앞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천천히 팔을 뻗어 제 품에 나카후리소데를 강하게 끌어안은 그래의 입술이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나는 또 너를 찾는다.]

 

 

 

 

 

 “ .. 싫어요.. 가까이.. 오지.. 말아요!.”

 “ 널 위해 팔까지 내줬는데.. 이렇게 거부하면.. 아저씨가 마음이 아프잖아..”

 

 제 팔과 다리를 휘감은 쇠사슬을 잡아 당기며 벽으로 바짝 붙어 남자를 피하는 정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고개를 짤짤 흔들어대며 남자의 손길을 피하려는 정구의 목덜미로 다가온 손아귀가 단 번에 목덜미를 잡아챈다.

 괴로운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정구의 팔을 강하게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가득 안아든 남자의 입술이 정구의 이마로 떨어진다.

 

 “ .. 나는.. 나는 아저씨한테 이런 일 당할 이유가 어, 없어요!.. 나는 야.. 야마구치의 안주인이란 말이야!.”

 “ 잘도 안주인이란 말을 잘도 지껄이는구나.. 그 야마구치가 내 거였다는 걸 자 아는 놈이 말이야..”

 

 거칠게 턱이 잡혀 억지로 들어올려진 얼굴로 분노에 점철된 시선이 꽂혀온다. 벽에 밀어붙여진 정구의 눈 앞에 작은 약병을 짤짤 흔들어 보이는 남자의 손이 약병을 열어젖힌다. 코에 바짝 들이대진 약병에서 나는 기이한 향에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거부하던 정구의 시선이 탁하게 흐려진다. 슬쩍 벌려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을 마지막으로 남자의 품에 풀썩 쓰러져 내린 정구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던 남자의 입술이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불 위로 쓰러져 내리 정구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천천히 방을 나선 남자의 시선이 방 밖에 서서 느긋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에게로 고정된다.

 

 [ 그래.. 어떻게 하실 생각 이십니까?.]

 [ 약속을 지켰으니 나도 약속을 지켜야겠지.. 좋다.. 가서 진지하게 얘기를 해보도록하지.. 원하는 곳이 어디까지 인지 말이야.. 야마구치는 쉬운 놈들이 아니거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시선이 방문을 흘끗 바라본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비열한 거래를 뒤로 하고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온 남자의 손이 뻗어져 흐릿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정구의 뒷통수로 다가온다. 슥슥 머리를 쓰다듬어오는 손길에 잔뜩 긴장해 몸을 떨어대는 정구의 어깨를 잡아챈 남자의 손이 제가 억지로 입혀 놓았던 유타카를 벗겨낸다.

 약기운에 발갛게 달아오른 가슴팍을 바라보며 피식 웃던 남자의 고개가 슬쩍 숙여진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가슴을 쓸어 내리던 남자의 몸이 제 몸을 바짝 들이민다. 탁해진 시선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고 있었다.

 

 “ 그 녀석이 엉망이 된 네녀석의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주 아주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말이야..”

 “ .. .. .. 아저.. .. .. ..”

 

 팔을 뻗어 남자의 어깨를 밀어내는 정구의 시선이 흔들린다. 본능적으로 상대를 밀어내는 정구의 입술이 애원을 쏟아낸다. 자신을 거부하는 정구의 턱을 강하게 그러쥔 손아귀에 억세게 힘을 준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입술로 제 입술을 가져다댄 남자의 혀가 힘없이 축 쳐진 입술을 파고든다.

 억세게 휘어 잡혀진 혀로 아릿한 아픔이 파고든다. 눈가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단박에 무시해버린 남자의 손이 정구의 다리 사이로 거칠게 파고든다. 팔을 아래로 뻗어 남자의 손목을 그러쥐고 고개를 흔들던 정구는 남자의 손이 다시 집어 올린 약병을 코에 처박는 것을 끝으로 정신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약에 취해서 창녀처럼 더러워진 모습을 그 녀석이 보면 말이야.. 너만 보면 잘려나간 팔이 아파온단 말이지.. 쿡쿡 쑤셔서 용서를 할 수가 없어.”

 “ .. .. .. 그래.. .. 흐읏.. ..”

 “ 야마구치의 안주인이란 말이지.. 그래.. 내가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도.. 네겐 그대로 안주인의 자리를 주도록하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비부를 파고드는 손길에 본능적으로 몸을 떨며 억눌린 신음을 흘리는 정구의 눈가에 본능적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천천히 들어올려진 손이 남자의 어깨를 강하게 그러쥔다. 툭툭 끊기는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남자를 있는 힘껏 밀어낸다. 자신을 거부하는 손길에 분노한 듯 얼굴을 잔뜩 구긴 남자의 손이 허공으로 들어올려진다.

 닫혀진 방문 사이로 살의 마찰음이 들려온다. 끊임없이 정구를 밀어붙이는 남자의 비열함에 몸을 떠는 정구의 몸을 완벽하게 파고든 남자의 시선이 허공을 바라보며 서늘하게 웃는다.

 정구의 허리를 강하게 조이는 남자의 팔이 제가 가진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약에 취해서도 저를 거부하려는 정구의 뺨으로 수차례 날아드는 손길이 잔인하기 그지없다.

 

 “ .. .. .. .. ..”

 

 헤벌어진 입술이 만들어내지 못한 단어가 혀 끝에서 맴돌다 사라져간다.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은 남자의 팔이 열에 들뜬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정구를 옥죈다. 끊어질 듯 쉴새 없이 그래의 이름을 불러대는 정구의 입술을 틀어막아 버리는 남자의 손에 강하게 힘이 들어간다. 억지로 끼워진 의수가 달라붙은 어깨의 통증이 올라온다.

 

 

 

 

 [ 찾았.. .. 니다..]

 [ 그래.. 알았다.]

 

 일주일이 이주가 되고, 이주가 한 달이 되었을 즈음, 방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의 참담한 목소리가 방안을 조용히 울렸다.

 목소리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 앞에 놓인, 잘 벼려놓은 일본도가 섬뜩한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이스 코테츠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기다리던 그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마당에 내려선 그래의 어깨에 걸쳐진 정구가 만든 나카후리소데가 바람에 흩날려 마치 벚꽃이 흩날리는 듯 보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서는 그래의 뒤를 따르는 사내들의 표정이 꽤나 비장하다.

 제 옆자리에 앉은 여인의 다소곳한 모습을 한 번 흘끗 바라본 그래의 시선이 창 밖으로 향한다. 붉어진 눈시울을 가리려 눈꺼풀을 내리감은 그래의 귓가로 단조로운 음성이 파고든다.

 

 [ 아이스 코테츠의 녀석들은 야마구치를 먹어버리기 위해 독기를 품었을 테니, 제대로 정신을 차려야 할게다.. 오늘의 일은 스미요시카이와 이나가와카이에선 눈감아 주기러 했으니.. 확실히 밟아줘야 할게야.]

 [ .. 알고.. 있습니다.. 그 남자도.. 확실히 매듭 지어 줘야 겠죠..]

 

 아이스 코테츠의 녀석들의 본거지로 들어서는 검은 차의 행렬에 문을 지키던 사내들이 잔뜩 긴장하는 것이 보여진다. 천천히 차에서 내린 그래의 차가운 시선에 얼굴을 굳혔던 사내들은 천천히 열리는 입술이 만들어내는 단어에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 야마구치의 안주인을 되찾으러 왔다.]

 [ .. 야마구치의.. 그 남창을 말하는…]

 

 사내는 억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가슴팍에 남은 상흔으로 줄줄 흐르는 핏줄기를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던 그래의 발걸음이 천천히 앞으로 옮겨진다.

 거칠게 열어젖혀진 문 안에서 무방비하게 있던 사내들의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래의 발에 짓밟힌 사내가 그제서야 비명을 내지른다.

 

 [ 야마구치의 안주인은 어디에 있나.]

 [ 아무리 야마구치 구미의 두목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거 아닌가?.. 쓰레기 하나 수거하러..]

 

 안채에서 걸어 나오는 사내의 입술이 피식 비웃음을 흘린다. 기모노 자락을 흩날리며 걸음을 옮겨 다다미 마루 위로 올라선 그래의 손이 슬쩍 들어올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다다미 위에 서있던 남자가 쓰러져 내린다. 분노로 점철된 시선이 가슴에서 피를 꾸역꾸역 내뱉으며 깊은 신음을 흘리는 사내의 얼굴에 고정된다. 가슴 깊이 상처를 입은 사내의 독기어린 시선이 그래에게로 향한다. 싶더니 이내 서늘한 그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사내의 귓가로 들려오는 자신의 수하들의 고함소리와 야마구치 사내들의 담담한 목소리가 섞여간다.

 

 [ 모두.. 죽여주마.. 내 외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오늘은 아이스 코테츠를..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들어주마.]

 

 천천히 다다미를 즈려 밟으며 앞으로 걸어나가는 그래의 발걸음이 서늘한 냉기를 뿜어낸다. 안으로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짙어지는 역겨운 향기와 음탕한 습기가 온 몸을 감싸온다.

 본능적으로 창호문을 그러쥔 그래의 귓가로 천박하기 그지없는 신음소리가 파고든다. 분노에 손을 떨어대던 그래의 손이 난폭하게 창호문을 열어젖힌다. 분노에 휩싸여 안으로 들어서는 그래의 등 뒤로 엉망으로 망가져 떨어지는 창호문 소리가 들려온다.

 방 안을 온통 휩싸고 있는 기묘한 향에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이 이리저리 돌리던 그래의 눈에 최음향을 뿜어내는 향로가 보여진다. 목울대를 울리며 버럭 소리를 지른 그래의 발이 향로를 난폭하게 차버린다.

 

 “ 흐앗, .. 아아.. ..”

 

 탁하게 흐려진 두 사람의 몸뚱아리가 얽혀 쉴새없이 흔들린다. 남자의 허리 위에 앉아 음란하게 허리를 비트는 정구의 몸이 위아래로 흔들릴 때마다 그의 팔과 다리를 억압한 쇠사슬이 부딧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온다.

 정구의 팔에 수도없이 새겨진 주사바늘 자국과 남자의 팔이 닿는 곳에서 나뒹구는 약병들이 남자가 정구를 어떻게 밀어붙였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탁하게 흐려지고 멍한 시선이 허공을 바라본다. 바짝 마른 몸과 잔뜩 길어져 턱까지 내려와 연신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래의 귓가로 참담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 흐읏.. .. .. .. .. 하읏!!.”

 

 본능적으로 뻗어진 팔이 정구의 어깨를 그러쥔다. 휙 돌려진 시선이 일순간 맑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정구의 입술이 슬쩍 달싹인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려 제 앞에 선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 본 정구의 입술이 기쁜 듯, 슬픈 듯 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쇠사슬에 묶인 팔을 천천히 들어올려 남자의 목덜미를 끌어 안았던 정구의 입술이 살며시 열린다.

 

 “ … 당신 너무.. 늦었어요..”

 

 천천히 감겨드는 눈꺼풀을 바라보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엉망이 되어버린 표정으로 정구를 제 품에 안아 일으켜 버린다.

 갑작스런 쾌락을 빼앗긴 남자의 분노한 시선이 그래의 품에 안긴 정구에게로 향한다. 향에 취해서도 거칠게 몸을 일으킨 남자의 손이 정구를 향해 뻗어온다. 뒤로 물러서는 그래의 서늘한 시선이 남자를 노려본다. 제 손에 들린 칼 끝을 남자의 가슴팍에 가져다댄 그래의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 내 것에 손대지 마라.. 당신은 이제 야마구치의 두목도.. 내 아버지도 아니다.”

 “ 그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천박하고 더럽혀진 그 녀석 꼴을 봐.. 니가 쓸데 없이 헤매고 다니는 동안 그 녀석은 나랑 그렇게 천박하게…”

 

 그래의 손이 움직인다. 남자는 두어걸음 뒤로 물러서야 했다. 제 복부에서 쿨럭이며 터져나온 피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진다. 잔뜩 구겨진 얼굴로 그래의 얼굴을 죽일 듯 노려보는 남자의 귓가로 단조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 이녀석을 여전히 야마구치의 안주인이다.. 감히 손을 대면.. 나도 더 이상은 참지 않은 것이다.”

 “ 건방진 새끼!!.. 요시와라에 집어 넣은 것은 나다!.. 내 것을 훔친 것은 너다!.. 그 여자 아들!.. 바로 너!!!.”

 

 서늘한 칼끝이 남자의 가슴팍에 칼을 들이민다. 이를 앙다문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에 짙은 분노가 서린다. 천천히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서려는 그래의 등으로 팔을 뻗어 오던 남자의 발걸음이 뒤로 두어걸음 물러선다.

 복부를 가르는 상흔이 꾸역꾸역 피를 흘려댄다. 잔뜩 구겨진 얼굴로 제 상처를 짓누르며 그래를 바라보는 남자의 입술이 비죽이 욕설을 내뱉는다.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 더 이상 참지 않겠다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인다.. 다시는.. 한 발자국도 이 녀석의 앞으로 오지마라..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 건방진 소리 하지 마라.. 애송이!.”

 

 팔을 뻗어 그래의 품에 안긴 정구의 얼굴 가까이로 손을 가져간 남자의 눈 앞에 한껏 위로 처들려진 칼날의 번쩍임이 보여진다.

 다음 순간, 남자는 제 품에 안겨든 여인의 고고한 미소에 파르르 몸을 떤다. 남자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진다. 그래의 칼이 만들어낸 상흔 위에 처박힌 단도를 쥔 손이 천천히 남자의 복부에 강하게 쑤셔진 단도를 뽑아낸다. 천천히 뒤로 물러선 여인의 시선이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쿨럭이며 쏟아져 내리는 피가 웅덩이를 만들어낸다. 입술을 이죽이는 남자의 귓가로 다정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든다.

 

 [ 아버지의.. 전언 입니다.. 당신은 야마구치에서 영원히 제명이다.. 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 이런.. 개 새!...”

 [ 내가 저 아이를 가졌을 때도.. 당신.. 아이스 코테츠에 나를 넘겼었지.. 내가 참았던 건.. 순전히 저 아이 때문이었다.. 허나.. 나의 아들이 당당하게 야마구치를 이어받은 지금.. 내가 너 따위 녀석을 봐줄 이유가 없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일에 내 아들의 손을 더럽힐 수야 없지..]

 

 남자의 무릎이 풀썩 꺾여 자리에 주저앉는다. 슬쩍 뒤를 돌아본 여인의 손이 툭 그래를 방 밖으로 밀어낸다.

 제 어미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그래의 귓가로 여인의 단조로운 음성이 들려온다.

 

 [ 먼저 가거라.. 나는 네 아버지와 이야기를 끝내고 가겠다.. 아이가 힘들겠구나.. ]

 [ 어머니..]

 [ 어허.. 부부간의 이야기는 자식이 참견 하는게 아니다.. 정리는 아랫것들에게 시키고.. 너는 그 아이부터 데려가도록 하거라..]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그래의 발걸음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밖으로 옮겨진다. 제 품에 안긴 정구의 파리하게 질린 얼굴을 바라보던 그래의 입술이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피빛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아이스 코테츠의 정원에 내려선 그래의 시선이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래의 명령에 따라 홋코리로 도착한 차를 확인한 효민과 동식이 가게 안에서 후다닥 뛰어 나온다.

 

 “ !!!!.”

 “ .. 정구야!..”

 

 그래의 품에 안겨 홋코리 안으로 들어선 정구의 새파랗게 질린 안색에 파르르 손을 떨며 어쩔줄 몰라하던 효민의 시선이 그래를 강하게 노려본다.

 가슴을 거칠게 들썩이며 얼굴을 잔뜩 구긴 효민의 입술이 헤벌어지더니 이내 엄청난 목소리가 가게를 온통 울린다.

 

 “ 우리 형, 안힘들게 한다고 했잖아!!!!!!.. 우리가.. 이러라고 보낸 줄 알아!!!!!!!!!!!!!!!!!.”

 

 효민의 목소리에 번쩍 눈을 뜬 정구의 고개가 휙휙 돌아간다. 주변을 바라보는 정구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구겨진다. 제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은 그래의 가슴으로 올라온 정구의 손이 다음 순간, 그래를 강하게 밀쳐낸다.

 헤 벌어진 입술이 끔찍한 비명을 질러댄다. 퍽퍽 그래의 가슴을 밀어내는 정구의 탁한 시선은 그래를 보고 있지 않았다.

 

 “ 으아아악!!!!!!.. !!!!!!.. 그래씨!!!!.. 으아아악!!!!! 그래씨!!!!!!.”

 “ !.. 정구형!!!..”

 

 갑자기 파고든 팔이 정구를 그래의 품에서 강하게 떼어 놓는다. 그래는 멍하니 상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효민 또한 정구를 품에 안은 동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동식의 차갑게 식은 시선이 그래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몸을 들썩이며 처절하게 비명을 내지르는 정구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은 동식의 시선이 그래를 탓한다. 천천히 열린 입술이 조용한 목소리를 끄집어낸다.

 

 “ 이대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 쉬세요.. 정구가 정신 차리면.. 전화드리겠습니다.”

 “ 아니, 가지 않는다.. 지금 나를 찾는데.. 모른척..”

 “ 두목님, 그냥.. 친정에 보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정구가 힘들어 하니까.. 내일.. 오세요.. 이럴 때 정구는 저희에게 맡기시는게!.”

 

 다짜고짜 동식의 어깨에 이를 처박은 정구의 머리통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오동통한 동식의 어깨에 얹어진 하얀 셔츠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동식의 등을 그러쥐는 손길에 셔츠 실밥이 뜯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등을 돌린 동식이 잠시 멈춰서 낮은 한숨을 내쉰다.

 

 “ 효민아.. 두목님.. 방으로 안내해드려.. 정구 좀 진정되면아마.. 정말로 두목님 찾을 것 같으니까.”

 

 터벅터버 안으로 제 모습을 감추는 동식의 등짝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래의 얼굴을 바라보던 효민이 신경질 적으로 안으로 들어선다. 휙 몸을 돌린 효민이 코끝을 찡긋인다. 입술을 오물 거리며 낮은 한숨을 내쉬던 효민이 그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 들어 오세요.. 정구형 방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안채로 들어서는 귓가로 정구의 처절한 비명이 파고든다. 욕실 앞에 그대로 선 그래가 천천히 들어올린 손을 가만히 문에 짚어본다.

 이를 앙다물고 고통을 참아내는 동식의 낮은 신음과 처절한 비명이 뒤섞인 소리가 욕실문을 타고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래의 옆에 선 효민이 낮은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히 입술을 연다.

 

 “ 자해하는 걸.. 동식 형이 자기 어깨를 내줬었어요.. 기꺼이.. 동식형한테는 나처럼 동생이라고.. 기모노 입은 사람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고 비명을 지르고 했었거든요.”

 “ … …”

 “ 기모노를 입던 안입던.. 찾는게 두목님이니까.. 제발..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주세요.. 제발.. 우리 형 좀.. 잘 부탁드릴게요..”

 

 효민의 말에 그래는 그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한심함을 탓할 뿐이었다. 점점 잦아드는 비명소리 사이로 간간히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어느 순간 그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욕실의 문을 열어 젖히고 안으로 들어선다.

 탁하게 흐려진 시선이 제게로 향한다.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던 정구의 붉은 입술이 슬쩍 미소를 지어보인다. 천천히 들어올려진 시선이 그래의 어깨에 걸쳐진 기모노로 향한다. 슬핏 웃던 정구가 그래를 향해 팔을 뻗어 올린다. 익숙하게 정구를 제 품에 끌어안은 그래의 귓가로 물기어린 목소리가 파고들어왔다.

 

 “ 당신.. 너무 늦었어요..”

 “ .. 미안.”

 “ 너무.. 너무 늦었어..”

 “ 미안하다.”

 

 한치의 틈도 없이 그래의 품에 안긴 정구의 입술이 다시 오열을 쏟아낸다. 엉엉 우는 소리에 그제서야 안심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선 동식이 욕실을 나서며 그래와 시선을 교환한다.

 부드럽게 웃으며 욕실을 나서는 동식의 목소리에 그래는 조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제 동생.. 잘 부탁드릴게요.”

 

 둘만의 공간에 남겨진 그래와 정구의 시선이 그제서야 마주친다. 조용히 시선을 맞추며 정구를 제 품에 한껏 끌어안는 그래의 입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펑펑 울어버리는 정구의 입술이 가슴시린 단어를 쏟아낸다.

 

 “ 나를.. 나를 버렸다고 생각해서.. 더러워져서.. 이제.. 나는 이제.. 더러우니까..”

 “ 그만.. 더 이상 그런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오지 않으니까..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오지 않으니까.. 기다렸는데.. 오지 않으니까..”

 

 

 정구의 말에 그래는 그저 팔에 힘을 주어 정구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제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한참을 눈물을 쏟아내는 정구를 끌어안고 위로하는 그래의 다정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감는 정구는 그래가 어디로 갈세라 그래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제가 이걸 날려 버렸습니다!.

어흐흑... 저 탈덕 할 뻔 한 상황을 이해하시겠습니까? ㅜㅜ

이거보다 더 엄청난 분량이었는데.. 과거 얘기도 잘 버무렸는데 ㅜㅜ

다 날라갔어!!!!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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