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장편

[택정환] 달라 02

음흉마녀 2016. 2. 29. 21:02

선우의 말의 파장을 꽤나 컸다. 깜짝 놀라 선우의 얼굴을 바라보는 정환과 택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 이내 꽤나 멋드러진 미소를 지어 보인 선우가 빨르게 팔을 뻗어 이불로 어깨를 감싸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주변의 눈치를 보는 정환의 어깨를 가만히 틀어쥔다. 천천히 허리를 숙여 정환의 귓가로 제 입술을 가져간 선우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낸다. 택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동룡과 덕선의 귀에도 듣기 좋은 목소리가 파고들어 파문을 일으킨다.

 

" 무효로 만드는거? 간단해.. 우리 정환이랑 나랑 상성이 맞아서 학교에서 안내책자를 줬거든.. 아마 택이는 아직 그런거 못받았아서 모를텐데.. 내가 얘기 해줄게."

" 안돼. 선우야. 그러지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잔뜩 긴장해 눈치를 보다 후다닥 구석으로 피한 정환의 시선이 휙휙 제 주변으로 다가오는 알파들의 날카로운 시선에 어쩔줄 모르며 뒤로 바짝 제 몸을 붙이고 어깨를 움츠린 정환이 자리에 굳어버린 택의 눈치를 본다. 옷가지라도 입고 있다면 단 번에 밀치고 도망이라도 갔을 텐데, 이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이불만 걸치고 있는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웅크린 정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옷을 걸쳐 입은 택이 느긋하게 정환과 선우의 사이를 파고들어 가만히 선우를 바라보는 택의 셔츠 자락을 잡아챈 정환이 조용히 단어를 쏟아낸다.

 

" 나 옷 .. 좀, 옷 좀 주라.. 어? 나 옷입을래. 나 옷 달라고 새끼야!"

" 기다려. 또 벗을 거잖아."

" 뭐, 뭔소리야 새끼야 나 옷 입고 집 간다고! 옷 내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정환의 앞에 교복을 내민 덕선이 눈썹을 찡그리며 정환을 노려본다. 몇 시간 전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던 그 표정 그대로 정환의 옷을 흔들어대던 덕선이 휙 택을 노려본다. 씩씩 거리며 어깨를 거칠게 들썩이는 덕선의 곁으로 다가선 동룡 또한 평소의 웃음기 서린 표정을 지우고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던 상황에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뒤로 물러선 정환이 변명처럼 단어를 쏟아낸다.

 

" 저기, 저기.. 나는 지, 집에 갈 테니까 싸울거면 니들 마음대로 해!!"

" 가지말고 들어. 부모님들한테 뭐라고 할건데. 너 발현하고 나서 우리 엄마랑 너희 부모님이랑 같이 몇 번이나 만나서 얘기 하고 정한건데. 너 이렇게 가는거 나뿐만 아니라 너희 부모님들까지 무시하는거야. 그러니까 그대로 기다리라고."

" 그래! 여기서 다 결정하고 가! 왜 택이야? 왜 택인데! 나는, 나는 유치원 때부터 옆에 있었잖아! 왜 택인데! 왜!! 나는 같이 살잖아! 나는.. 나는 너희 집에 살잖아! 왜! 왜! 왜!!"

" 아 뭔 개소리야! 뭘 같이 살아! 대문을 같이 쓰는 거지! 그리고 너희끼리해! 너희끼리 하라고!! 아 나 갈거야!"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려는 정환의 팔을 잡고 그 자리에 불러 세운 선우의 손이 거칠게 정환의 머리카락을 틀어쥐고 들어올려 모두에게 택이 남긴 속박의 증거를 보이는 선우의 입술이 히죽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택이 당황한 표정을 감상이라도 하듯 잠시 바라보던 선우가 덥석 택의 잇자국 위에 제 이를 가져다 댄다. 입술을 크게 벌려 택의 잇자국을 완전히 뒤덮고 강하게 물어오는 탓에 정환의 입술을 타고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진다. 퍼덕거리는 정환이야 어찌 되었든 제가 할 일을 끝낸 선우가 휙 고개를 들어올려 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제 목덜미를 끌어안고 쓰다듬던 정환의 입술이 욕설을 내뱉기도 전에 선우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 이렇게 하면 무효. 각인 무효 만드는 거 간단해, 잇자국 혼선시키는 거.. 그게 가장 간단한 답이야. 이제 택이 무효."

 

잘생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선우의 말에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 버린 택의 시선이 황당한 듯 멍하니 선우를 바라보는 정환의 귓가로 동룡과 덕선의 악다구니가 들려온다. 동시에 떠벌리는 나도 나도란 목소리가 택의 좁은 방에 날카롭게 울린다.

선우의 얼굴을 바라보던 동룡과 덕선이 정환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잡아당기는 것을 바라보다 이내 분노한 듯 정환의 어깨를 잡아 두 사람을 떼어낸 택이 신경질 적으로 소리를 내지른다.

 

" 그만해! 정환이 아파하잖아! 그만하고 놓으라고!"

" 아 씨! 야! 튀어! 택아, 튀어!"

 

제게 뻗어온 손목을 잡고 냅다 달리는 정환의 발걸음이 빠르게 택의 방을 벗어난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내달리는 정환의 등 뒤에서 멍하니 팔을 뻗어 올린 택이 허무한 목소리를 낸다.

 

" 아.. 정환아.. 그거.. 동룡인데.."

 

빠르게 내달리며 휙 뒤로 돌아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대는 동룡의 뻔뻔한 면상에 제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는 덕선과 서늘한 한숨을 내쉬는 선우, 멍하니 허공에 뻗은 손을 아직도 내리지 못하고 선 택이 골목길에 멍하니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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