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장편

[택정환] 달라 05

음흉마녀 2016. 3. 22. 05:07

" 아! 아! 어, 엄마! 아! 아파! 아파요!"

" 으이구! 내가 못살아 못살아!!! 너! 어디! 갔다가! 이제! 서야! 집! 구석에! 들어! 와!!!"

" 아! 아! 엄마! 엄마! 아프다고요! 아파요! 그러니까 말을!! 말을 좀 들으라고요!!"

 

다짜고짜 날아오는 손바닥을 피해 몸을 잔뜩 웅크린 정환의 비명소리에 문 밖에 서있던 택이 얼마 있지도 않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유리 문으로 보여지는 정환과 미란의 그림자에 택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정환을 끌어내고 싶은 얼굴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정환은 분명 제가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미란의 손에 등짝을 내어주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택은 금방이라도 계단을 뛰어오르고 싶은 생각에 발을 동동거리고 있느라 철문이 열리고 선우가 제 옆에 서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그 자리에 서서 말대꾸 하던 정환이 미란의 손에 맞아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에 놀라 계단을 한꺼번에 두계단이나 올라선 택의 손목을 강하게 그러쥔 선우가 택을 끌어당긴다.

 

" 이거 놔.. 정환이.."

" 우선 따라와. 지금 정환이 어머니 화 풀어드리는게 문제가 아니니까. 빨리!"

 

다짜고짜 택을 이끌고 정환의 집을 벗어난 선우가 뒤에서 저를 부르는 택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걸음을 옮기는 선우의 등뒤에서 짐짓 화라도 난 듯 한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선우는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겨 제 집으로 들어선 선우의 손이 그제서야 택의 손목을 놓아준다. 멍하니 선우의 등을 바라보던 택의 고개가 슬쩍 꺾여 선우의 집 거실을 가만히 바라본다.

 

" 어제 저녁때부터 저러고 계셔."

" 아.. 빠.."

 

곤란한 표정으로 선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무성이 모습에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시선으로 멍하니 그 자리에 선 택의 손을 이끌고 제 집 거실로 들어선 선우가 열어젖힌 문 소리에 고개를 돌린 무성의 멍한 시선이 택을 바라본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성을 바라보던 택이 털썩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머뭇머뭇 입술을 타고 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그 보다 먼저 선우가 선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조아리고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 엄마, 나 할 말 있어요! 나도 정환이 걱정되서 어른들 하시는 말씀 들었는데.. 엄마,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나.. 정환이랑.. 같이.. 짝하기 싫어요."

" 서, 선우야."

 

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린 선우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굳어진 선영의 시선이 무성과 택을 번갈아 본다. 한참을 가만히 엎드려있던 선우의 입술이 다시금 제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가만히 그 앞에 앉아있던 선영의 털썩 맥을 놓아 버린다.

 

" 2년이나 좋아한 사람 있는데.. 저번에.. 정환이, 학교에서 그 일 있었을 때.. 지켜줬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모님들 하시는 대로 했는데.. 택이 덕분에 말 할 자신이 생겨서 이제서야 얘기하는거에요."

" 선우.. 야.. 그기.. 무신 말이고.. 그럼 어제 덕선이랑 싸운건 뭐고!"

" 그건 친구들끼리 자존심 싸움 한거에요. 아시잖아요. 우리 중에 오메가 형질인 사람, 정환이 뿐이잖아요.. 그래서 싸운거에요.. 아무 의미없는 자존심 싸움."

" 아니, 그기 말이!.. 근데 왜 이제서야 말하는긴데! 그럼 미리 말을..!"

 

선영의 날 선 목소리에 가만히 고개를 들어올린 선우의 눈동자가 가만히 선영을 바라본다. 선우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택을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정환은 수업중에 오메가로 발현되고 말았다. 부모님이 학교에 도착하기 전, 양호실에 누워 잠시 쉬던 정환의 침대 커튼을 열어 젖힌 것은 재수없게도 정환의 부모님이 아닌, 체육시간 다쳤다는 핑계로 야호실 침대를 빌리러 온 3학년 선배들 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쉬쉬하면서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우성 알파인 동룡이 제때 양호실로 들어가 선생을 부르며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정환은 분명 모두가 생각하는 최악의 일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말을 수근거리던 골목길 어른들이 내놓은 결론은 끝내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듯 했다.

 

" 나도 처음엔 같이 크던 정환이니까 어떻게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정환이랑 택이랑 서로 좋아하면..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만나도 되는거잖아요. 네? 엄마."

" 선우야."

 

할 말을 잃어버린 선영의 손을 그러쥔 선우의 행동에 울컥 눈물을 흘리며 선우의 가슴팍에 안긴 선영이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흘끗 고개를 돌려 멍하니 서있는 택을 향해 제 곁으로 오라 눈치를 준 선우가 가만히 선영을 일으켜 앉힌다. 알 수 없는 감정을 가득 담은 시선이 선우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은 택에게로 향한다. 툭툭 택의 가슴팍으로 가볍게 부딪히던 손이 이내 택의 어깨와 가슴에 퍽퍽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아무리 선우가 좋은 말로 포장해도 이 일의 최대의 피해자는 선우가 틀림 없다. 선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택은 아플법도 한데 선영이 손찌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놀란 선우가 제 어미의 손목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끌어안는다.

 

" 아, 엄마! 엄마.. 그만요. 응? 택이랑 정환이가 무슨 잘못이에요."

" 그럼! 선우 니는 뭘 잘못해서 그러는데! 이기 말이 되는 일이냐고! 왜 선우 니만 피해를 보는긴데? 왜?!"

" 잘못.. 했어요. 아줌마.. 잘못했어요."

 

울먹이는 택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분노를 삼킨 선영이 이내 자리를 잡고 앉아 심호흡을 하고 가만히 택을 바라본다. 우물쭈물 선영의 시선을 마주하던 택의 고개가 이내 푹 숙여진다. 제가 죄인이라도 된냥 여즉 무릎을 꿇고 앉아 선영의 눈치를 보던 무성이 무어라 단어를 쏟아내기도 전에 벌어진 선영의 입술이 우수수 단어를 쏟아낸다.

 

" 니는 도대체가 무슨 생각으로 이리 일을칬나! 세살 먹은 아도 아니고 생각도 없이 그렇게 일을 치냔 말이다! 이기 니들 끼리만 사고를 친다고 이기 될 일이고! 생각이 있는기고 없는기고! 선우는 그렇다치고 택이 아부지랑 정환이 어무이는 어쩔기고!! 어?!!"

" 잘못했어요."

" 아이고, 내도 모르겠다! 아이고! 아이고 참내 미치긋다! 이 노릇을 우짜노 말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푹 고개를 숙이고 멍하니 선영의 말을 듣고만 있는 택의 머리통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영이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터덜터덜 밖으로 나서는 선영의 뒤를 쫓아 무성이 죄인처럼 걸음을 옮긴다. 두사람이 사라지고 나서야 털썩 그 자리에 엎어져 제 머리를 쥐어뜯는 택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우의 손이 툭 택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 선우야."

" 걱정하지마. 지금 우리 엄마가 정환이네 갔을거야."

" 미안해. 선우야 미안해. 왜 나는.. 지금 이 상황보다.. 방금 전에 니가 한 말이 더 신경쓰여. 우리 아버지가 죄인처럼 아무말도 못하시는데, 나는 그것보다도 아까 전에 니가 한 말이 더 신경쓰여. 미안한데.. 선우야."

" 아, 이 미친새끼. 넌, 새끼야 보라누나 아니었음 내가 끝까지 니 편 안들어줬어 임마."

 

툭 택의 머리를 한대 친 선우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털썩 편하게 주저앉아 택이 고개를 들어올리길 기다린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선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택의 시선이 선우에게 진실을 캐묻는다. 참담하게 일그러진 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우의 입술이 다시금 욕설을 내뱉는다. 잠시동안의 침묵 후, 선우의 입술이 진실을 말한다. 처참하게 바닥에 부서진 택의 귓가로 선우의 잔인한 목소리가 흩어져 꽂힌다. 택은 아무런 말도 목구멍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고 끅끅 기묘한 소리로 거친 숨을 내쉴 뿐이었다.

 

" 보라 누나가 얘기 했어.. 이깟 일로 우리가 헤어지는게 말이 되냐고.. 우리가 헤어진게 본능에 져서 헤어지게 되었다는게 자존심 상한데.. 그래서 어제 덕선이랑 나랑 싸우는거 보고 결심했다고 그러더라.. 정환이한테 가지고 있는게 죄책감인지 사랑인지 확실히 말해보라고."

" 보라누나?"

" 그런데 그 소리 들으니까 뭔가 확실해 지더라고.. 이건 아니다 싶더라.. 우리가 그깟 일에 헤어져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헤어져서.."

" 보라.. 누나? 너 보라 누나랑 사겼어?"

 

불시에 날아든 질문에 멍하니 중얼거리던 선우의 얼굴 가까이로 제 얼굴을 바짝 들이민 택의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서린다. 가만히 시선을 맞추고 섰던 택이 불쑥 불만을 터트린다.

 

" 왜, 보라 누나랑 사귀는거 얘기 안했어? 그랬으면.. 내가 그렇게까지 안했을거 아니야. 왜 아무말도 안했어?"

" 왜, 뭐, 뭐 내가 뭐, 말해야되? 너도 속였잖아.. 정환이 발현 안됐을 때부터 좋아했다면서, 동룡이랑 혈투까지 하신 분이, 왜 어른들한테는 아무말도 안하고 일을 이렇게 키웠는데?"

 

그자리에 굳어진 택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선우가 히죽 미소를 지어보인다. 선우의 집 철문을 열고 동룡이 뛰어들어와 덕선이 미쳤다는 소리를 지르지만 않았어도, 선우는 제 마음대로 택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리고 놀려댔을 것이다.

갑작스런 동룡의 등장에 놀라기도 전에 택은 본능적으로 마루에서 뛰어내려 정환의 집으로 내달린다. 이미 골목길 가득 덕선의 고함소리와 동일의 욕설이 뒤섞인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두사람이 난리를 치는 통에 무성이며 선영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문 앞에 서서 발을 동동거리는 선영과 무성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유리문을 열어젖힌 택의 시선이 성균의 팔에 허리를 붙잡혀서도 정환을 향해 팔다리를 내질러대는 덕선에게로 꽂힌다. 입술을 타고 한숨이 터져 나와 조용히 정환의 집 거실에 울린다.

 

" 왜 택인데!!! 왜 택이냐고!!! 나도 있는데! 왜! 아 왜냐고! 왜 늬들끼리 마음대로 정하는데!!!"

" 야이 미친가시나야! 그만 좀 하라고오!! 아이고 미치겠네 이거! 작작 안하냐!!!"

" 아우!!! 재수없어!!!!"

 

후다닥 안으로 파고들어 좀 전에 덕선의 발에 떠밀려 바닥에 주저앉은 정환에게로 달려가 정환을 제 품에 끌어안는다. 당황한 정환이 택을 밀어내려 손을 뻗어올린 순간, 그 보다 빨리 날아온 덕선의 다리가 택의 등짝에 꽂힌다. 깜짝놀라 후다닥 택을 품에 끌어안은 정환의 저를 노려보는 미란의 싸늘한 시선에 움찔 어깨를 떨었다.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그 앞에 털썩 주저앉은 미란의 주먹이 퍽퍽 택의 등짝에 떨어진다. 아프다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정환을 끌어안고 버티는 택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정환이 불쑥 미란과 택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택을 제 뒤로 숨긴다. 미란의 입술이 육두문자를 쏟아내려 열린 순간, 그 보다 먼저 정환의 목소리가 온 집안을 크게 울린다.

 

" 엄마! 택이는 잘못 없어요. 제가 그런거에요. 제가 잘못한거에요. 그러니까 택이는.."

" 야이 미친놈아!! 지금 니가 그런 말을 씨부릴!! 때,냐! 선우 어쩔 건데!! 지금, 니가! 택이 편을 들 때냐고! 이 미친놈아!!!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이를 어째!!! 내가 이제 선우 엄마를 어떻게 보냔 말이야!!"

" 아, 성님! 그만하소! 우리 선우 괜찮다! 선우가 괜찮단다! 그러니까 그만하소. 우리 선우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단다! 지금 나한테 그래서 차라리 잘됐다고 그러드라니까! 그러니까 화 좀 푸소!"

 

집안으로 뛰어든 선영의 목소리에 주먹질을 멈춘 미란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제 앞에 앉은 정환과 후다닥 제 곁으로 다가오는 선영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미란이 푹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이내 정환은 제 얼굴로 날아온 미란의 발길질에 태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아직도 화를 삭이지 못한 미란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등을 돌린다. 깜짝놀라 덕선의 허리를 잡았던 손을 놓은 성균이 미란의 곁으로 다가가 비틀거리는 미란을 부축한다.

 

" 택이 너는 빨리 집에 가있고, 정환이 니는 빨리 니 방에 들어가라! 느그 엄마랑은 우리가 얘기 할테니까니! 아 빨리!"

" 죄송해요."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로! 빨리 느그 엄마 또 튀 나오기 전에 들가라!"

선영의 손에 떠밀려 제 방으로 들어가서던 정환이 휙 고개를 돌려 눈물이 그렁그렁한 택을 바라보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젓고 제 방으로 들어선다. 그 뒤를 쫓아 홀랑 들어가버린 덕선의 괄괄한 목소리에도 어쩔 수 없이 돌아선 택의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어진다.

 

 

" 아 뭐, 왜, 왜, 뭐."

" 그렇게 좋냐? 최택이 어?!"

 

정환은 제 얼굴 위에서 휘휘 저어지는 덕선의 주먹에 잔뜩 쪼그라들어 침대 구석으로 피해 무릎을 세우고 조금이라도 덕선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잔뜩 분노한 덕선은 모르고 있었지만, 정환은 덕선의 앞에서 간신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성알파들이랑 달리 제대로 자신의 기운을 조절하지 못하는 여성알파들과 대면 할때는 오히려 오메가들이 조심을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던 터였다. 교육담당 선생 말처럼 덕선은 제 기운을 감추지도, 억누르지도 않고 그대로 모두 발산하고 있었다.

정환은 덕선이 눈치채지 못하게 베개로 제 얼굴을 감추고 덕선과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나마 제 책상의자에 앉아 팔팔 뛸 때야 조금 버틸만 했다지만, 제가 침대 구석에 몸을 구겨넣고 통 저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자 침대로 뛰어들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베개를 꽉 쥔 손에 힘을 주고 고개를 파묻은 정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설익은 여인이 거칠게 침대 매트리스를 쳐대며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는 덕선을 흘끗 바라보던 정환은 슬쩍 보인 벌겋게 달아오른 뺨에 찰싹 소리를 내어 잡아온 덕선이 불쑥 제 얼굴을 들이밀고 바락바락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야, 야, 야아! 뒤로 좀.. 가, 가라고오!"

" 아 왜 택이냐고!!! 그 상등시… ㄴ.. 등신이냐고!! 아 왜!! 언제부터야 언제부터냐고! 그때야? 아니면 그때야? 어?!"

" 아, 어, 무, 무슨 그때고 그때야! 비켜! 아 저리가라고오!! 으히어억!!!!"

" 꺄아아!!!"

 

기묘한 비명소리에 고개를 휙 돌린 덕선의 입술을 타고 비명이 울려퍼진다. 정환의 방 창문 밖에 선 택의 서늘한 시선이 정환을 찢어발길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대로 굳어진 정환을 향해 입술을 길게 찢어 미소를 지어보인 택이 천천히 몸을 돌려 창문에서 벗어난다. 깜짝 놀라 멍하니 택의 등짝을 바라보던 덕선이 정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완전히 구겨져 버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 택이.. 화.. 났지..?"

" 어.. 택이 화났.. 다.. 엄.. 청."

" 아씨!!!! 내가 왜 그것까지 신경써야 되는 건데!!!!"

" 미안해. 성덕선, 미안하다. 그런데 말이야."

" 아니까 닥치지?"

 

다정하게 손목을 잡아오는 정환의 행동에 갑자기 엉엉 소리까지 내어 울던 덕선이 번뜩 눈을 치켜뜨고 정환을 노려본다. 한참을 소리를 죽여 끅끅 거리던 덕선이 불쑥 침대에서 일어서 정환에게서 등을 돌려 쿵쿵 발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편하게 숨을 내쉰 정환이 잔뜩 고민 섞인 시선을 창밖에 고정했다.

뭔가 큰 오해라도 한 표정으로 돌아서던 택의 얼굴을 기억해내며 슬쩍 방 밖의 눈치를 보지만, 미란의 고함소리를 보아하니 정환이 방밖으로 나서는 것은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듯싶었다. 털썩 침대에 엎어져 한숨을 내쉬던 정환이 이내 포기한 듯 눈을 내리 감는다.

 

" 어후!! 내가 저걸 어떻게 키웠는데!!!!! 어후!!!!"

 

밤 골목을 울리는 미란의 목소리가 정환을 아프게 찔러 왔지만, 정환은 그 보다도 제 가슴을 찔러오는 택의 걱정에 몸을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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