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스캔들/장편

[중기아인][걸오여림] 몽리(夢裏) 16

음흉마녀 2016. 4. 21. 02:52

" 걸오!"

 

제 허리에 감긴 강한 팔에 잡혀 물 속에서 튀어나온 용하의 입술을 타고 익숙한 별호가 터져 나온다. 다리 아래로 뛰어내려 내달린 선준과 윤희의 시선이 제 앞에 선 재신을 마치 꿈을 꾸는 듯 한 얼굴로 멈춰선다.

등 뒤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휙 고개를 돌려 저를 향해 달려오는 병사들을 바라보던 재신의 입술이 피식 비웃음을 흘린다. 빠르게 뻗어진 손이 어설프게 들린 검을 빠르게 빼앗아 든다.

제 등뒤로 익숙하게 연인을 숨긴 재신의 발걸음이 후다닥 다리 위로 뛰어오른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아직은 알아차리지 못한 사내의 발걸음이 의기양양하게 둘을 향해 달려온다. 걱정스러운 듯 제 등 뒤에 서서 제 옷깃을 그러쥔 연인을 제 뒤로 완벽하게 숨긴 재신이 제 머리통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가볍게 쳐낸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선 상대의 시선이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완연한 비웃음을 지어 보이던 사내의 입술이 비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 그래,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제 서야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늦었다. 네 놈의 모든 것이 다 까발려질 텐데.. 차라리 평생 숨어 살지 그랬는가."

" 그 면상.. 꼴도보기 싫었는데 그래도 다시 만나서 반갑다."

 

피식 웃는 재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인수의 얼굴이 잔뜩 구겨진다.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인수의 얼굴 가까이로 제 입술을 바짝 들이댄 재신의 입술이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제게 의문을 가득 담은 시선을 보내는 인수를 향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은 만큼 조용히 속삭인다.

 

" 나도 네 놈의 발 밑을 기면서 준비한 것이 있거든.. 내가 그렇게 얼치기인 줄 알았습니까. 장.의.어.르.신."

" 네, 이놈!"

" 병조판서께서 하신 일이 워낙 뒤가 구린 일이 많지 않는가.. 그것을 자네도 나도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리고, 내가 돌아왔으니 그대의 뜻대로는 돌아가지 않을 거란 말이다. 뒤로 물러서시지 하인수."

" 니 정인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이것이냐."

 

고개를 바짝 들이대고 가만히 시선을 맞추고 있던 남자의 재신이 손이 들어올려진 순간, 인수의 어깨가 그대로 굳어져 버린다.

툭툭 인수의 뺨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서늘함에 이를 앙다물고 고집스럽게 재신의 얼굴을 노려보는 인수를 향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인 재신의 시선이 제 등 뒤로 다가온 선준의 얼굴을 흘끗 바라본다.

 

" 구용하 데리고 뒤로 물러서 있어."

" 사형."

" 원하면 제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선준의 손에 붙잡혀 뒤로 물러서는 용하를 뒤로하고 빠르게 검을 들어올린 재신이 손이 인수의 손에 들린 검을 쳐낸다. 뒤로 슬쩍 물러서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고 제 앞에 선 인수를 노려보는 재신의 입술이 연신 비웃음을 짓는다. 인수를 그런 재신의 태도와 화가난 듯 고함을 내지르며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러댄다.

머리통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쳐내고 단 숨에 상대의 허리춤으로 검을 날린다. 가볍게 제 검을 걷어내고 빠르게 뒤로 물러섰던 검이 제 복부를 향해 날아드는 것을 손쉽게 피해낸 재신의 검이 번쩍 들어올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빠르게 내리쳐진다.

 

" 으아아악!!!!"

 

눈깜짝 할 사이에 검과 함께 떨어져 나간 손목이 바닥을 구른다. 검붉게 물든 소매자락을 우그러트려 잡은 인수의 비명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멈춰버린 사내들의 시선이 검은 창의를 입고 무미건조하게 제 앞에 털썩 주저앉은 인수의 뒷통수를 내려다 보는 시선이 냉랭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병조판서의 사병들을 바라보는 재신의 입술이 비죽이 비웃음을 그린다.

느긋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인수의 귓가로 제 입술을 가져가 조용히 속삭이듯 목소리를 내는 재신의 시선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을 바라본다.

 

" 그래, 그런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성균관의 모든 생도들이 그러하듯 나도 너를 이길 수 없다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여림을 탐하느라.. 그대의 혜안이 무뎌지더군.. 그래서 얻을 수 있었다. 병판대감의 치부 말이야."

" 그걸 왜…?"

" 누가 그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라 명 하였을 것이라 생각하는거냐."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가만히 손을 뻗어 잘려진 손목에 제 창의를 찢어 둘둘 휘감은 재신의 시선이 조용히 들어올려진다. 신음을 참아내는 인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 등을 돌린 어 재신의 등을 노려보는 인수의 시선에도 아랑곳 없이 발걸음을 옮겨 그에게서 멀어지는 재신의 귓가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낮은 욕설이 튀어 나온다. 움찔움찔 걸음을 옮겨 재신을 공격하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스레 다가오던 병판의 사병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재신의 등뒤로 빠르게 내달려온 윤희의 손에 들린 왕의 밀명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리는 금패 였다.

황당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버린 듯 멍청한 표정으로 멈춰 선 것은 같은 얼굴의 다른 사내였다. 세트장이라고 얕봤던 물가에서 번쩍 일어선 중기의 목덜미에 매달려 올라온 아인의 허리께로 빠르게 다가온 손이 다급하게 화살을 빼내 물 속으로 던져 버린다.

비명을 내지르려는 아인의 입술로 다가온 큰 손이 아인의 입술을 막는다. 후두둑 피가 떨어지는 광경에 놀란 듯 다리 위에서 멍하니 아인과 중기를 바라보던 사내의 얼굴이 마치 악귀처럼 구겨진다.

컥컥 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는 아인을 끌어안고 빠르게 다리 위로 올라서는 중기와 아인의 시선이 사내의 고함소리에 놀라 달려온 스태프와 매니저들에게로 향한다. 아직도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중기와 아인의 꼴이 보기 싫다는 듯 팔을 뻗으며 달려드는 사내의 모습에 깜짝 놀란 아인이 후다닥 중기의 등짝에 매달려 숨는다. 제 허리춤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줄도 모르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아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 뭐, 뭐야 뭐야!! 뭐야! 저거 뭐야! 혀, 형!! 저거 뭐, 뭐야! 뭐야!"

 

빠르게 내달려 아인에게로 온 사내의 손이 어떻게든 아인을 잡아채려 하지만 쉽게 사내의 손에 잡힌 아인이 아니었다. 사내는 아인의 매니저와 스태프가 제 팔을 결박해 바닥에 처박힐 때까지 아인의 팔을 잡으려 애썼다. 완전히 공포에 질려 덜덜 떨어대는 아인을 후다닥 제 품에 감추고 사내에게서 멀어진 중기의 시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내려다본다. 어느샌가 옆구리로 다가온 손수건이 꾹 눌러온다.

 

" 저, 저거 뭐야. 저거 뭐야? 어? 형! 저거 뭐야?"

" 병원가자."

" 아, 뭐냐고오! 와, 와아.. 얼굴 보고 식겁했다."

" .. 똑같다고 하던데. 진짜 하인수랑."

 

흘끗 고개를 들어올려 가만히 중기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아인을 제 품에 힘껏 끌어안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중기의 가슴이 거칠게 들썩인다.

분명 중기는 보는 눈이 없었다면 제 팔에 힘을 주어 아인을 끌어안고 울어버렸을 것이다. 제 감정을 꾹 내리 누르고 참아내는 중기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내려다 보던 아인의 손이 천천히 뻗어져 조용히 중기의 손목을 그러쥔다.

 

" 사과해."

" … …"

" 그때처럼 뻔뻔하게 하지 말고 똑바로 사과해. 그럼.. 패버리진 않을 테니까. 사과해 송중기."

 

퍼뜩 고개를 들어올려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중기를 노려보는 아인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잠시 멈췄던 중기의 발걸음이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무어라 이야기 하기도 전에 꽤나 난폭하게 중기의 차 뒷좌석에 처박힌 아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제 재촉에 빠르게 출발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 제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숙인 중기의 입술이 연신 한숨을 내쉰다.

고집스럽게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있는 중기의 뜨거운 한숨 소리에 입술을 쭉 내밀고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우물거리는 아인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중기의 고개가 슬쩍 돌려져 불만 가득한 얼굴을 바라본다. 가슴 속에서 타고 오르는 한숨을 내쉬는 중기의 시선이 흘끗 아인의 파리한 얼굴을 바라본다.

 

" 우선 병원부터 가자. 응급실 가서 치료 먼저 하면 원하는 대답 전부 해줄게. 그러니까 상처부터 좀 치료하자."

 

심하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조용히 피투성이 손을 마주잡아오는 뜨거운 손가락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려던 입술 끝에 힘을 주어 애써 무표정을 유지한 아인이 울컥 피를 토해내는 옆구리에 중기가 손에 쥐어준 손수건을 대고 누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응급실 안으로 들어서 침대 위에 엎드린 아인과 차 안에서 조용히 그를 기다리는 중기와는 대조적으로 자신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몰려든 기자들이 벌써 응급실 앞에 진을 치고 피투성이 셔츠를 입은 아인의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구리가 화살에 꿰뚫렸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아인을 떠올리며 제 머리를 잔뜩 헝크러트린 중기의 입술이 어쩔 수 없는 욕설을 내뱉는다. 점퍼 주머니에서 연신 울려대는 핸드폰을 귀찮은 듯 들어올린 중기의 입술이 짜증섞인 목소리를 낸다.

 

" 네. 네. 지금 치료 받고 있습니다. 네. 아무래도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네. 죄송합니다."

 

쉴새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PD를 향해 조용히 사과를 내뱉고 나서야 통화를 종료할 수 있었다. 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힘껏 열려진 차 문과 플래시에 슬쩍 고개를 들어올린 중기의 시선이 흘끗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 아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팔을 들어올려 휙휙 제게 자리는 내주길 무언으로 명령하는 아인의 미소에도 중기의 얼굴은 펴질 줄 모른다. 하지만, 아인은 그 시간의 갭도, 자신들 사이의 감정의 골도 아무런 것도 모른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 형, 우리 집으로 좀 가줘요."

" 어, 어어, 어 그래."

 

제 눈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챈 듯 슬금슬금 제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차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긴 중기의 머리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인의 입술이 중기가 눈지채지 못하게 조용히 웃어버린다. 그것은 재신도 마찬가지 였다. 제 앞에 털썩 주저앉아 제 다리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어깨를 떨며 소리 죽여 오열하는 용하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인다. 천천히 아래로 손을 뻗어 용하를 부축해 일으켜 제 품에 끌어당겨 안은 재신의 귓가로 병판의 사병과 관군들 앞에 나타난 왕의 병사들이 재신의 곁을 지키는 친우들을 보호하듯 둘러싼다.

 

" 전하께서 일을 마무리 하였거든 당장 들라 하였습니다."

" 알겠다."

 

용하의 손목을 그러쥐고 앞으로 걸어나가는 재신의 찢겨진 창의 옆구리를 바라보며 울먹이는 용하의 손목을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용하를 제 곁으로 끌어당긴다.

거대한 궁의 문을 들어서며 재신은 아주 잠시동안 제가 걸어왔던 곳에 시선을 보내며 제 이름을 부르던 이를 떠올려 본다. 복잡하게 얽힌 생각을 풀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제 마음을 온전히 상대에게 전하기 위해 사내들은 서로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