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스캔들/장편

[아인여림][중기걸오] 몽리(夢裏) 15

음흉마녀 2016. 3. 25. 05:20

" 여림 사형, 이러다 큰일 납니다! 좀 더 생각을 하시고!"

" 전하의 명을 잊었는가.. 우리에게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대물 자네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 그래서 하는 말씀입니다. 막무가내로 이리 들어가셨다 무슨 일이라도 당하시면 어쩌시려 하십니까.. 사형! 사형!"

 

막무가내로 담을 넘으려는 용하의 유생복을 그러쥐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윤희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용하는 휙 몸을 돌려 담벼락에 매달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사내의 한숨소리에 의문을 보내던 용하는 제 몸을 불쑥 위로 밀어 올리는 힘에 떠밀려 담벼락 안으로 떠밀어 버린 선준이 이내 담벼락에 매달린다. 펄쩍 안으로 뛰어든 선준이 용하의 손목을 잡아 끈다. 자신들 뒤에서 저희들을 부르는 윤희의 목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징벌방을 향해 내달리는 용하의 시선이 징벌방 앞에 선 인수의 수하들을 향해 꽂힌다. 기둥 뒤에 낮게 몸을 숙여 제 기척을 숨긴 용하의 시선이 호롱불에 흐릿하게 떠오른 사내들이 그림자에 고정된다. 툭 서늘한 숨을 내쉬는 용하는 거의 한 몸이 되기 일보직전인 모습에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아인의 목덜미에 올라간 손아귀에 힘을 주어 옥죄고 있는 것은 분명 장의의 그림자였다. 쭉 뻗어진 손이 장의의 옷깃을 잡고 간신히 서있던 아인의 무릎이 풀썩 꺾인 순간, 용하는 낮게 욕설을 내뱉고 질끈 눈을 내리 감는다.

다리를 버둥이며 억센 손아귀를 빠져 나가려는 아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 고집스러움에 이를 앙다물고 간신히 참아내던 용하는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제게 달려와 주먹을 어설픈 주먹을 날리는 용하를 보지 못하고 섰던 고봉이 볼썽사나운 꼴로 뒤로 벌렁 넘어진다. 그 덕에 그 뒤에 섰던 병춘까지 용하와 같이 널브러진다.

저들끼리 뒤엉켜 버둥이는 사내들을 뒤로하고 달려온 선준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던 강무에게 달려들지 않았다면 용하는 금새 강무의 손아귀에 잡혔을 것이었다.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용하의 발걸음이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인수에게로 향한다.

용하의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용하는 아인의 목덜미를 틀어쥔 인수의 손을 거칠게 잡아 떼어내고 제 품에 아인을 숨긴다. 숨줄이 잡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저를 끌어안는 힘에 와락 팔을 뻗어 상대를 끌어안았던 아인은 그가 용하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목청껏 엉엉 울어버린다. 후두둑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에 놀라기도 전에 분노에 찬 듯 서늘한 시선으로 용하와 아인을 향해 손을 뻗어 오던 인수는 제 등뒤로 정수리를 처박아 버린 윤희의 무지막지한 힘에 떠밀려 징벌방 바닥에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 사형!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닙니다! 어서 반촌으로 가세요! 전하께서 사람들을.. 어서요!!!!!"

" 네 놈들은 이 성균관에서 단 한발자국도 못나간다! 내 그렇게 둘 것 같으냐! 이대로 성균관을 나섰다간 내 두 놈 다 가만두지 않을 테다! 강상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는 것을 아닐텐데?! 문재신이 몸바쳐 지킨 비밀을 얼굴 똑 같은 가짜놈 때문에 간단히 버리겠다는 것이냐 구용하!!"

" 그것으로 걸오를 옥죄었단 소린가? 강상죄? 그래 어디 다시 협박해 보시게.. 어디 한 번 그래봐! 내가 어떤 짓을 할지 어디 한 번 그래 보라는대도!"

 

싸늘하게 굳어진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인수를 향해 서늘한 목소리로 일갈하고 돌아선 용하의 옷깃을 강하게 그러쥐고 덜덜 떨리는 걸음을 옮기는 아인이 흘끗 바닥에 널브러진 인수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후다닥 용하의 품에 안긴다.

빠르게 내달리는 아인과 용하의 발걸음 소리에 이를 앙다물고 자리에서 일어선 인수의 분노한 발걸음 소리가 두 사람들 쫓아 빠르게 옮겨진다. 이미 저 앞으로 사라져 버린 두사람의 뒤를 쫓는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어둠을 가로지른다.

 

" 아인!"

" 아우!"

 

휘청이던 다리에 제 멋대로 꼬여 볼썽사납게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는다. 후다닥 아인을 부축한 용하의 발걸음이 다급하게 옮겨진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분노한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두사람을 집어삼킬 듯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아인은 중기의 뒤를 쫓으며 그 두려움 보다도 방금 전 제가 나뒹굴던 순간, 제 귀를 파고드는 섬뜩한 목소리에 온 신경이 집중된 듯 멍하니 다리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 송중기를.. 죽인데.. 송중.. 기를.. 죽일.. 거래.. 무슨.. 일이.. 있는거야.. 형한테.. 무슨 일이.. 있는거야…'

 

다급하게 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재신도 마찬가지 였다. 분명 제 귀를 파고든 용하의 음성은 다급하게 아인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제 앞에 서서 섬뜩하게 웃던 끔찍한 사내는 벌써 제 눈에 보이지 않고 있었다.

촬영 준비가 한창인 스태프들 사이를 다급하게 걷는 재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온다. 마지막으로 보인 그 서늘한 미소는 분명 섬뜩한 의도를 가진 미소였다. 재신을 사내의 뜻을 이루게 해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이를 앙다물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재신의 시선이 저 멀리 돌다리 위에 선 중기와 하얀 옷을 걸친 사내에게로 향한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섬뜩한 기운에 아인이라 저를 부르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해버린 재신의 시선이 싸늘하게 중기의 등판에 고정된다.

그리고..

 

" 저자들을 잡아라!! 뒤에 놈은 죽여도 상관없다!"

" 말도 안돼."

 

아인의 손목을 잡고 정신없이 내달리던 용하의 발걸음이 그자리에 멈춰선다. 저 앞에 일렬로 선 병사들의 모습에 그자리에 굳어져버린 용하의 등짝에 달라붙은 아인의 손이 파르르 떨려온다. 뒤에 놈은 분명 저를 두고 하는 말 일 것이다.

파르르 떨려오는 손이 자신의 도포자락을 틀어쥐고 공포에 질려 툭툭 여린 숨을 내쉰다. 우물쭈물 용하의 등판에 달라붙은 아인의 동그랗게 뜬 눈꼬리에 눈물이 어린다. 자신들을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병조의 병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자신들을 향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겨누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놀라 멈춘 용하의 귓가로 자신들을 바로 뒤쫓아온 인수의 서늘한 목소리가 파고든다.

 

" 여림! 당장 돌아와! 그 놈이 누구던간에! 그대는 더 이상 그를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걸오! 문재신 그 놈은 분명 내게 니 놈의 안전과 제 안위를 교환하였다! 그것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냔 말이다! 그 놈은 더욱이 문재신도 아니지 않아!!!"

" 요, 용하.. 씨.. 도, 돌아.. 가요.. 나는 괜.. 찮으니까.. 나.. 어차피 아까 이렇게 될 거 알았..."

" 그 입 다물게.. 분명, 자네는 걸오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이게 정녕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아네.. 그런데, 그런데 아인.. 나는 말이다. 네 손을 놓으면.. 걸오도.. 재야까지 잃을 것 같아서 그럴 수가 없어. 그러니까 아인..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게.. 제발.."

 

울컥 울음을 쏟아낸 용하의 손이 와락 제 등에 매달린 아인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돌아선 용하의 시선이 저를 불러 세운 인수의 싸늘한 얼굴을 노려본다. 저보다 키도 크고 단단한 녀석이 파들파들 거리는 것이 무엇이 그리 안타깝다고 제 팔에 온 힘을 다해 아인을 끌어안은 용하의 시선이 인수를 노려본다. 하얗게 질려버린 꼬락서니를 하고도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인수의 시선을 마주한 용하의 어깨가 떨려온다. 하지만, 용하는 제 품에 안긴 소년을 놓아 버릴 수가 없었다.

고집스레 서로를 끌어안고 제 자리를 지키는 사내들과 달리 재신은 제 온 힘을 다해 내달리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냉랭한 단어를 쏟아내는 사내들의 모습에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내달리는 다리가 어찌나 후들거리며 흔들리는지 재신을 두 어번을 넘어질 뻔 하며 간신히 내달리고 있었다.

고개를 비틀어 꺾은 사내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천천히 중기를 향해 다가가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낮은 욕설이 입술을 타고 터져 나온다. 미친 듯 다리를 놀리는 재신의 귓가로 사내의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그래서?"

"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다 니가 문제야. 너, 너 송중기가 문제더라.. 너를 만나기 전엔 그렇게 천박하지 않았어. 그렇게 천박하게 웃는 애가 아니었다고."

" 그건 니 생각이지. 이 환상이고 니가 만든 환상에 아인이를 껴맞추고 거기서 벗어난다고 혼자 지랄하는 건 아니고?"

" 웃.기지마!! 우린 잘.. 그래 우, 우린 잘 해왔어! 너만 아니었으면 우린.. 아무 일도 없었어!!! 그래, 그래..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아니었으면 우리 사이는 아무 문제없지.. 그렇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는 중기의 입술이 피식 비웃음을 지어 보인다. 가만히 서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걸음걸이로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사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서있던 중기는 이내 빠르게 앞으로 내달려 제게 다가오는 사내의 손에 들린 작은 주머니 칼을 보지 못한 듯 가만히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 단어를 쏟아내려던 중기는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끌어안은 이의 이름만 불러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 문재신!!!!!"

[ 아인!!!!!]

 

멈춰선 중기의 귓가를 울리는 제 목소리는 아인을 부르고 있었다. 저를 끌어안고 가만히 고개를 숙인 재신의 입술이 한숨처럼 욕설을 내뱉는다. 비틀 뒤로 물러서는 재신의 하얀셔츠 사이로 퍼지는 붉은 습기에 놀라 슬쩍 뒤로 물러선 사내의 손으로 그제서야 시선을 보낸 중기의 입술을 타고 이내 버럭 욕설을 내지른다. 비틀거리는 재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뒤에 선 사내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중기와 달리 용하는 그저 그 자리에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저를 끌어안은 아인의 팔이 파르르 떨려오는 것에 놀라 굳어진 용하의 시선이 아인의 등 뒤로 향한다. 제때 달려온 선준과 윤희가 아니었다면, 왕의 밀명을 받은 이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아인과 용하는 화살구멍 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 허나, 간신히 피했다고 생각했던 그때 날아온 화살 하나를 발견한 아인은 본능적으로 용하를 끌어안아 버렸다. 멍하니 아인의 옆구리에 박힌 화살을 멍하니 바라보던 용하의 다리가 비틀거린다.

 

" 아, 아파라.. 새, 생각.. 보다.. 아파.. 용하.. 씨.. 괜찮.. 아요? 안.. 다쳤...어?"

" 아인.. 아인!"

 

비틀 거리며 상처입은 남자의 몸이 흔들거린다. 그를 품에 안고, 품에 안겨있던 남자의 입술이 상대의 이름을 부른 순간, 돌다리가 푸스스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린다. 제 손을 놓는 상대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으려 힘을 주어 잡고 당겨 안은 사내들이 그대로 떨어져 내려 다리 아래 흐르는 강으로 빠져 버린다.

 

" 아인!"

[문재신!]

" 송중기!"

[ 용하씨!]

 

물살에 서로의 손을 놓힌 사내들의 시선이 서로를 찾는다. 운동엔 담을 쌓은 아인과 용하의 손이 구조를 요청하듯 서로를 향해 퍼덕인다. 떨어지는 충격에 잠시 떨어진 손을 다시 잡으려 고개를 돌린 중기와 재신의 시선에 있을 수 없는 이를 찾아낸다.

다급하게 팔을 뻗어 상대를 끌어안은 남자들의 시선이 흘끗 어지럽게 흐르는 물 속에서 살며시 얽힌다. 와락 저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제 연인을 와락 끌어안은 남자의 입술이 이제서야 자신의 연인의 이름을 온전히 부른다.

 

" 걸오! 걸오! 자네 인게지?!"

" 그래, 그래.. 그런데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좀.. 먼저 알려줘야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다리 위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용하를 제 품에 더욱 끌어안은 재신의 서늘한 시선이 다리 위에선 인수를 노려본다.

갑자기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 재신을 향해 의문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잠시 선준과 윤희는 오랜만에 입술에 큰 미소를 그렸다. 툭툭 무미건조하게 용하의 등을 두드리며 안심시킨 재신의 귓가로 화들짝 놀라는 용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아, 아인이.. 활을 맞았는데."

" 그건, 그 놈이 알아서 할 노릇이고. 나는 너만 안다치면 된다."

 

재신의 말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용하를 강하게 끌어안은 재신의 입술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신과 마찬가지로 아인을 품에 안은 중기의 입술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 난폭하게 뽑아낸 화살 상흔을 꾹 누르고 찬찬히 아인의 얼굴을 가만히 확인한 중기의 입술이 비죽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우리 아인이 잘 지냈어?"

" 형.. 형.. 나 무서웠어.. 어엉.."

 

와락 중기를 끌어안은 아인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바라보던 중기의 팔이 와락 아인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어디서 보았는지 민영의 비명소리에 달려온 남자들의 손아귀에 잡힌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중기의 얼굴이 그제서야 다정한 미소를 그려낸다.

 

" 돌아왔어."

[ 돌아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