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단편

[태오방지][택정환] 접전(接戰) 03

음흉마녀 2016. 6. 28. 01:49

태오는 꽤나 느긋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땀범벅이 된 택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꽤나 우아한 손짓으로 제 건너편에 앉기를 권하는 태오의 행동에 거칠게 가슴을 들썩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제 연인을 찾는 택의 행동에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올려 한쪽 구석에 자리한 문을 가리킨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 방문을 열어젖힌 택의 눈쌀이 찌푸려진다. 구석에 바짝 붙어 긴장한 정환의 눈동자에 자신이 새겨짐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튀어나간 택의 손이 정환을 와락 끌어안는다. 어느새 택의 뒤를 쫓아 방문 앞에 선 태오의 시선이 택의 등짝에 달라붙은 긴 손가락을 서늘하게 노려보다 침대에 웅크리고 누운 방지의 얼굴을 흘끗 내려다 본다.

 

" 야, 야, 일어나. 일어나서 나 따라 나와."

 

내정한 목소리에 푸스스 머리털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푸스스 방지가 상체를 일으켜 제 몸에 시트를 둘둘 말고 태오의 뒤를 쫓아 비틀거리며 걷는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 보던 택의 고개가 휙 돌려져 정환을 서늘하게 노려본다. 정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택의 손에 이끌려 태오와 방지 앞에 털썩 주저앉혀졌다.

정환은 파리하게 굳은 방지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택이야 자신을 완전히 믿고 있었지만, 방지의 상대는 그렇지 못한 듯 했다. 우물쭈물 방지를 바라보는 시선에 걱정이 묻어나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런 정환의 얼굴을 서늘하게 노려보던 태오는 자신의 수하에게 명령해 테이블 위에 고급 바둑판을 내려 놓았다.

한 눈에 봐도 분명 장인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용무늬가 새겨진 바둑판과 옥석으로 만들어진 바둑알을 한참 동안 멍하니 내려다보던 택의 눈동자가 천천히 들어올려진다. 바둑기사를 앞에 두고, 그것도 최택을 앞에 두고도 조태오란 사람은 너무도 느긋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 고르시죠."

 

택은 황당한 표정으로 태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놀라울 뿐이었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흑돌을 잡으려던 택은 제게 불쑥 백돌이 들어있는 통을 내미는 태오의 행동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 사람을 프로를 앞에 두고 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택은 불안한 듯 제 옷깃을 그러쥔 정환의 손을 꽉 잡아 주며 천천히 깊게 숨을 내쉬며 태오와 시선을 맞추던 택은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히죽 웃어 버리는 태오의 모습에 섬뜩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이 사람… 왠만한 사람이 아니다.

쉽게 이길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던 태오의 손이 손바닥을 드러내 보이며 위 아래로 짧게 흔들린다. 어디 한 번 수를 둬 보라는 뜻 이었다. 택은 제 안주머니에 찔러 넣어져 있던 안경을 꺼내 쓰고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켰다. 바둑돌이 든 상아 통을 한 번 뒤적이던 택의 손이 옥석을 들어올린 순간, 태오의 얼굴도 미소를 완전히 지워 버렸다.

 

탁!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둑판을 가른 손이 돌을 내려 놓는다. 여유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바로 검은 돌을 내려놓은 태오가 무언으로 택의 가슴을 찔러댔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정환은 식은땀을 흘렸고, 방지는 털썩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